(2014.6.8. / 성령강림절)

 

도입 : 성령체험

① 오늘은 교회력으로 성령강림주일이다. 성령체험은 어떠한가? 흔히 뜨거운 체험을 생각한다. 그런데 시원한 체험도 있다.

② 최망례 집사(절대화 할 수는 없지만 성도 간에 나눌 신비한 간증으로 여기라)

③ 존 웨슬리 목사 : 올더스게이트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참석했다가 거기서 회심사건이 일어난다.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제 나 자신이 그리스도를, 오직 그리스도만을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주께서 나의 모든 죄를 영원히 제거하셨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얻었다.”

 

warmed, hot, fired

 

그것은 광기적인 뜨거움이나 화학적인 뜨거움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속에 느낀 경험으로서의 사랑의 뜨거움이다. 그리고 그 뜨거움이 식지 않도록 간직해 나갔다.

 

  1. 명절 끝날

① 7장에는 명절이라는 단어가 7번 나온다. 어떤 명절이 가까워 오자, 아직 주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다면서, 제자들(형제들)을 먼저 예루살렘으로 보내신다. 그리고 나중에 따로 예루살렘에 가셨다. 예수님께서 오늘의 말씀을 들려주시고, 요한복음이 이것에 대해 증언할 때, ‘명절’이라는 단어를 놓치지 않고, 이 말씀을 전하고 있다. 그러니까 ‘명절’은 오늘의 말씀을 바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② 어떤 명절인가? 초막절. 초막절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숙콧’이다. 초막절이란 어떤 절기인가? ‘수카’라고 하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오두막이나 천막을 의미한다. 속죄일 후 5일 째 되는 안식일날 시작되며 다음 안식일까지 8일간 계속된다. ‘속죄일’ 속죄하는 날은 엄숙하다. 반면에 초막절은 한결 즐거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 분위기를 연상해보라.

 

③ ‘유월절’과 비교하여 어떻게 다를까? 유월절은 애굽에서 탈출할 때, 긴박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기억하는 절기이다. 핵심은 출애굽의 순간, 해방의 순간,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관련된 절기이다. 초막절은 광야에서의 생활과 관련된 절기이다. 광야를 유랑하듯 살아야 했던 백성들이, 그 과정(여정) 가운데,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었는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광야의 척박한 환경’을 거닐고 지나가며, 견디느라 힘들었다. 훈련의 시간이었다지만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 세월들을 어떻게 보냈는지, 참 신기하고 이상할 정도였다. 곧 굶주려 죽을 것 같았고, 목말라 죽을 것 같고, 낮의 열기와 밤의 추위에 죽을 줄만 알았다. 아무도 광야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결국은 40년의 세월을 보내고, 광야의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입성하지 않았는가?! 되돌아보니 하나님의 은혜였다.

 

④ ‘초막절’은 이런 상징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광야의 인생길 위에 있는 이스라엘에게 든든한 장막이 되어주셨다는 것이다. 그 세월을 자신들만의 힘으로, 아무의 도움 없이 지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호 그늘막이 되어주시고, 집처럼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셨다.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초막절에 대한 교훈을 들어보라.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레23:43)

 

하나님은 하늘의 지붕이 되어주셨고, 발 디딜 땅의 자리가 되어주셨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이스라엘을 인도하셨다.

 

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삶이 척박하고, 어려워도,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도 없는 듯, 괴로울 때가 많다. 그러나 그래도 하나님은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신다.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눈동자와 같이 지키고, 주 안에서 우리의 거처가 되어주신다.

⑥ 삶은 신비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솟아날 구멍이 있다.

정약용이 다산초당의 주인 아들이었던 윤종심(尹鍾心)에게 들려주는 말을 들어보라.

 

가난한 선비가 정월 초하룻날 앉아서 일년 양식을 계산해보면, 참으로 아득하여 하루라도 굶주림을 면할 날이 없을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그믐날 저녁에 이르러 보면, 의연히 여덟 식구가 모두 살아 한 사람도 줄어든 이가 없다. 고개를 돌려 거슬러 생각해보아도 그러한 까닭을 알 수 없다. 너는 이러한 이치를 잘 깨달았느냐? 누에가 알에서 나올 만하면 뽕나무 잎이 나오고,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울음소리를 한번 내면 어머니의 젖이 줄줄 아래로 흘러내리니, 양식 또한 어찌 근심할 것이랴? 너는 비록 가난하다고 하나 그것을 걱정하지는 말라.

 

⑦ ‘명절 끝날’ 제 8일째를 의미하는 날이다. 히브리어로 ‘심 하트 토라’라고 한다. 그 의미는 ‘토라(율법)의 기쁨’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이날이 되면 아이들에게 캔디와 당도 높은 과일을 준다고 한다. 시편19:10의 고백을 상기시키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율법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이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 이것을 가르칠 목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⑧ 하나님의 법과 말씀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어떤 의미인가? 끝없는 광야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언제 이 기나긴 시간이 끝날지 그것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큰 힘과 의지할 처소가 되어주었다.

우리 인생의 광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1. 성령을 가리켜

① 그렇다면, 37b-38절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

목마르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수분부족으로 갈증이 난다는 말일까? 아니라는 것을 안다. 살아가면서 의미와 보람을 갖지 못할 때. 인간관계나 누구와의 관계가 어려울 때 목마름을 느낀다. 또 어떨 때 목마름을 느끼는가?! 우리는 여러 가지 목마름을 느낀다.

② ‘명절 끝날’ 이 말씀을 하셨다.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서서’라는 대목에 주목해보라. 그냥 지나치기 쉬운 대목이다. 주님은 서 계시다. ‘서’(standing)있던 동작의 연속이 아니다. ‘외쳐’라는 구절과 연결해서 보자면, 무슨 상황인가? 주님은 지금 선포하고 계신 것이다. 옆 사람과 대화하듯 하신 말씀이 아니다.

③ 요한이 들려주려는 바는 분명하다. 예수님이야 말로 우리의 참 울타리가 되시고 안식처가 되신다는 것이다. 초막보다 더 좋은 거처가 되신다는 것이다. 더 단순히 말하자면, 초막절이라는 상징의 원형이 바로 주님이시다.

 

④ 왜 그런지에 대해서, 혹은 어떤 신앙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잠시 뒤에 살펴보자. 그 전에 39절을 이해하고 넘어가겠다. 39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주님께로부터 생명수를 공급받기 위한 전제조건이 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대목이 중요하다. 주님의 분명한 약속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다시 39절 상반절을 보라.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

어떤 약속을 하고 계신가? 주님을 믿는 자들이 성령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주님은 특별히 요한복음에서 보혜사 성령을 약속하셨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14;26)

 

⑤ 39장 하반절을 읽어보자.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임이 믿어질 때, 예수님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현존하심을 알게 될 때, 성령이 임한다. 성령 없이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기에, 우리는 어떠한가?

허망하고, 새로워지지 못하고, 공허한 것 아닌가?

 

그러나 성령에 대해 주님께서 확신을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다른 복음서를 통해서 알아보자. 누가복음 11:10~13이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 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느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⑥ 이 시간 하나님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성령을 주신다.

  1. 생수의 강 :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는가?

① 초대 : 하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긍휼하신 분이시다. 그 사랑의 뜨거움에 우리의 심령이 다시금 불붙길 원하신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우리를 초대하신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이사야 55:1)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한 계시록에서도 새하늘 새땅을 기다리며 갈급하고 지친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모두 작은 의미에서의 새하늘 새땅을 기다린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요한계시록22:17)

 

② 예수 : 광야의 인생길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주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주님은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셨다. 인체에서 수분배반현상이라는 것이 있다. 쉽게 말하자면 물 아닌 음료는 더 갈증을 일으키고, 탈수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우리를 배반하는 것은 무엇인가? 세상의 명예, 부, 자랑. 그런데 예수님은 요한복음 13장의 증언에 의하면,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증언한다. 갸롯 유대가 예수님을 배반할 것을 알고 있었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것도 알고 계셨다. 그러나 주님은 그 발을 씻기셨다.

 

로마서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예수님은 우리가 곤란에 처하고, 어려움에 처해도, 결코 우리를 모른다 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로마서의 바울을 통해 주님은 우리에게 “그 무엇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③ 자비 : ‘첫사랑이 못살면, 가슴이 아프다. 첫사랑이 잘 살면, 배가 아프다. 그런데 첫사랑하고 살면 어디가 아플까?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세번째는 자비이다. 주님은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괴로움과 곤고함을 죄와 욕심에서 나온다. 그 욕심을 관장하는 신체부위가 배로 상징된다.

 

이 성경본문에 깊이 숨겨져 있는 모세유형론을 여기서 장황하게 설명할 수 없는데, 유대인들이 그토록 꿀송이보다 달다고 자랑했던 율법을 통해 드러난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진노만 드러날 뿐이었다. 19절 상반절을 보라.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바울도 로마서에서 유대인에게 말한다.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롬2:23)

 

우리가 율법적인 잣대와 기준을 가지고 판단한다. 그런데, 그 율법이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을 안다. ‘이 말씀을 누가 들었으면…’ 하는 말씀이 있다. 말씀을 듣고도 행치 못하며 따로 노는 경우도 있다.

광야의 인생길 위에, 하나님의 심판이 놓였다고 생각해보라.

그런데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주님의 뜨거운 사랑과 자비이다.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는 말씀을 자궁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욕심을 감싸고 있던 배가 생명을 감싸고 있는 양수처럼 말이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주님은 성령이 뜨겁게, 시원하게 넘치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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