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10일 부활절 제 5주, 교회창립주일
섭리를 따라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오늘 뜻 깊은 주일에 저희를 부르셔서, 예배의 자리에 참여하게 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부활절5주, 창립기념주일과 임명예배로 모였습니다. 성령으로 저희와 함께 하셔서, 저희를 부르시고 초대하시고 사명맡겨주신 은혜를 깨닫게 하옵소서. 신령과 진정을 다해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하게 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시12:25)
-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피난처 되시고 방패 되신 주님께 나아온 여러분 모두를 환영한다. 주님은 우리의 반석이시며 요새이시며 쉴만한 물가이시다.
벌써 창립 10주년이다. 되돌아보면 참 어렵고 힘든 시간들도 있었지만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크시다. 성도들 개인적으로도 어려운 시간들을 보낸 분들이 많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 안에서 주님께 붙어있으면서 마치 포도나무에 접붙인 가지처럼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공급받으며, 안되는 것 같아보이고 안되는 것 같아보여도 되는 역사를 이루어왔다.
또 올해는 우리가 그토록 바랬던 것처럼 자교회를 두고 편안하게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됐다. 어느 누가 예상이나 했겠으며,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될 줄 알았을까?
시편121편에서 시인은 성전에 올라가면서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1-2) 노래한다. 도움이 절실했던 시인은 은혜가 충만했다. 산은 이스라엘이 성산으로 여기는 시온산일 수도 있지만 아무 도움을 찾을 수 없는 막막한 현실일 수도 있다. ‘하나님이 도우셨다’고 고백하는 시인의 체험을 생각해보라. 하나님은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자에게 임하셔서 큰 도움과 능력과 역사를 이루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부활하신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된 우리를, 우리 교회를 특별히 사랑하시고 복주신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에 이를 수 없었을 것이다.
요한복음15:4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그러니 앞으로도 영원히 이 교회를 출입하며 주님을 의지하면서 그 사랑 안에 거하시기를 빈다. 여러분의 가정이 잘 되고, 자녀가 잘되며, 사업과 기업이 잘되고, 장래일이 잘되기를 축원한다.
- 좋은 교훈
10년 이라는 시간을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다. 제가 억지로 하거나 강제적으로 뭔가를 하지 않고, 때로는 방치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인간적인 물음도 있었는데, 아무튼 뭔가를 강요하지 않아도 저절로 전통이 생기고 특징이 생겼다. 행사와 일마다 시비와 다툼이 없는 규칙이나 암묵적인 원칙이 생겼다. 다만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만한 것 몇 가지를 다시 한번 상기하자면 이렇다.
1) 믿음은 안되는 것 같아 보이고 안되는 것 같아 보여도 되는 것이다. 지금 현실만 보지 말고,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더욱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란다.
2) 한 길이 막히면 아홉 길이 열린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의 시종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낙심하지 말고 믿음을 지켜 담대해지기를 바란다.
3) 보여서 믿는 게 아니라, 믿으니까 보이는 것이다. 디모데전서에서 “미쁘다 이말이여 모든 사람이 받을 만 하도다.”(4:9) 말씀하고 있는 게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이것이다. “믿음의 말씀과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라.” “믿음의 말씀”들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 “좋은 교훈”들을 얼마나 간직하셨는가? “양육”을 통해 더욱 확대되는 믿음의 눈이 열리기를 빈다. 성경의 모든 이야기가 곧 여러분의 이야기이다. 믿음으로 말씀을 붙들고 승리하시기를 빈다.
4)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되는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믿고, 심신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농부가 때가 되면 새벽 일찍 일어나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가꾸고 돌보며 경작하는 것처럼 충성을 다하시기를 빈다.
- 사명
앞으로 10년을 내다보면서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이곳에 교회를 허락하심으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이 무엇일까?
여담이지만 이것도 신기하다. 여러 차례 들으셨겠지만 신기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다. 이곳에 들어올려고 시도했던 많은 교회들이 있다. 오랫 동안 들어올 계획을 가지고 타진했었다. 그런데 불발됐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우연처럼 순식간에 모든 게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확신할 수 있었다. 바로 이곳에 교회가 자리하게 되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뜻하신 일 맡기시는 일이 있겠다. 그것을 바로 알고 순종하며 충성하며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잘되게 하시고 복되게 하시려는 것은 자명하다. 그렇지 않은가?
다름이 아니라 믿음 가운데 서서 말씀을 붙잡고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가는 일이다. 10년 내에는 이곳 4층을 교회로 다 채웠으면 좋겠다. 그런 비전을 품어본다. 선포하고 부르짖으면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란다.
왜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
코로나19 감염자 이태원 클럽 방문으로, 또다시 우려가 커졌다. 31번 확진자 다음으로 충격이다. 김강립 차관이 브리핑 때, 이런 말을 했다. “맑은 물 위에 떨어진 잉크 한 방울이 급속도로 퍼진다는 것을 기억해달라.” 질병은 전파된다. 그 감염성으로부터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이 사실을 망각하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전파자가 되고 만다.
죄와 그로 인한 멸망도 마찬가지다. 질병이 전파되는 것처럼, 멸망에 이르게 하는 죄에 너무나 빨리 감염되고 영적인 치사율은 절대적이다.
어느 사람이 담벼락 밑에다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렸다. 그러자 지나가는 사람이 하나둘씩 버리기 시작했다. 비양심적인 일들이 전파되는 것이다. 단속에 나서자 미안하다고 곧 자기 쓰레기를 가져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개중에는 자기만 버린 게 아닌데, 왜 그러느냐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다. 재난 지원금을 줬더니 일부 상점에서, 카드 수수료 등을 명목으로 원래 가격보다 더 비싸게 받았다고 한다. 이재명 지사가 암행을 파견해서 이런 업소들을 단속했다. 카드깡으로 현금화 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다. 누구 하나가 꼼수를 부리고 방치하게 되면 나쁜 관행이 두루 퍼진다. 당연히 의도된 것과는 달리 왜곡된다. 나중에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을 우리는 너무 많이 봐 왔다. 지역경제를 살리고 소상공인들을 살리자는 취지니까, 이럴 때 사용하는 사람도 현명해야 하고, 상인들도 정직해야 한다.
세상에 죄는 급속도로 전파된다. 성경은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가 원죄를 갖게 됐다고 말한다.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았다고 야고보서는 말씀하고 있다. 질병은 치료제를 개발하면 되고, 사회의 부당한 모습들은 제도를 개선하고 개발하면 되는데, 죄는 어떻게 치료되고 회복될 수 있을까?
예레미야는 이렇게 탄식했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곳에는 의사도 있지 아닌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됨인고?”(렘8:22)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고 용서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주님은 우리 모두가 그 보혈에 씻김을 받고 감화받은 이들이 되기를 바라신다. 이 진리를 믿으시고 깨달으시기 바란다.
예수의 보혈로 우리의 죄가 씻김을 받고 용서받으며 구원받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물음을 피할 수 없다. 몇 가지 스스로 자문해보라.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이들을 보시면서,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기도하셨던 주님의 마음처럼 미움이 지워지고 사랑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는가?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으나 공회원들 앞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던 베드로처럼 십자가 앞에서 비겁한 마음이 사라지는 대신 용기와 담대한 마음을 갖게 되었는가? 혈기등등했던 바울이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 온유하고 겸손해졌던 것처럼 인간적인 혈기와 투쟁하는 마음 대신에 온유하고 감싸는 마음으로 겸손해졌는가? 누군가의 사적인 치부를 들춰내고 함부로 말하고 보복하고 싶은 대신 그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기도하며 긍휼한 마음을 가졌는가?
어느 식당에서 저학년 아이 두 명이 돈가스 두 개를 각각 먹고 있었다. 결재는 아동급식카드로 했다. 이걸 지켜본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각각 먹기에는 너무나 많은 양이었는데, 둘이서 나눠 먹었으면 음식을 남기지도 않고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말이다. 그러면서 복지제도에 문제를 제기했다. 자기가 낸 세금으로 저소득층 아이들이 점심식사를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저런 식으로 낭비되는 게 불만이라는 것이었다. 비뚤게 보려니까,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기자가 취재를 해보니까, 식당아주머니가 황당해했다. 그 아이가 식사를 못한 친구랑 나눠먹으려고 하나를 시켰는데, 식당 아주머니가 많이 먹으라고 하나를 더 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돈도 안받았다고 한다. 누군가는 아깝게 보이고 누군가의 눈에는 부족해보였다. 누군가는 자기 손해라고 생각했고, 누군가는 자기가 나눠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욕심과 시기심이라는 죄로 물든 마음으로 보니까, 그의 마음은 지옥이다. 그리고 세상도 지옥이 된다.
비유컨대 우리가 주의 백신이 되고 치료제가 되고 처방전이 되기를 주께서 바라신다. 그러기에 주님은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사명을 맡기셨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8-20)
마가는 그 권세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앉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5-18)
- 주의 은혜 안에 사랑 안에 거하라.
오늘 말씀은 생명과 은총의 너무나 당연하고도 편안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진리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주님은 참포도나무요, 하나님은 농부시다. 그리고 우리는 포도나무의 가지이다.
믿음의 말씀과 좋은 교훈을 사모하며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자.
주님께서 공급해주시는 은혜를 사모하며 우리의 삶과 생명을 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