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17일, 주헌절 후 제 6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부르셔서, 값없이 공로 없이 은혜를 사모하게 하신 주님 저희를 부르셔서, 예배의 자리에 참여하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세상적인 복과 영광이 아니라 주님의 참 은혜와 사랑을 사모하며 주님 전에 나왔사오니, 사모하는 영혼마다 속사람에서부터 강건하여 지며, 약할 때 강함 되시는 놀라우신 주의 은혜가 충만하게 하여 주옵소서. 성령으로 저희와 함께 하셔서, 저희 예배가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은에서 찌꺼기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 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잠언25:4)

 

 

  1. 화평을 말하지 않고 거짓말로 모략하며

주중에 세상의 뉴스를 접하면서 다윗의 처연한 탄식의 기도가 들려왔다.

 

“무릇 그들은 화평을 말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평안히 땅에 사는 자들을 거짓말로 모략하며, 또 그들이 나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고 하하 우리가 목격하였다 하나이다.”(시35:20-21)

 

가짜 뉴스와 거짓된 정보가 그럴싸하게 유통되면서, 이 땅이 병들고 있다. 아니 이미 병든 세상이 심각하게 악화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교회가 광신이나 맹신에 빠지고 거짓으로 병들면 세상이 교회를 외면하고 지탄받는 정도가 아니다. 세상마저 사이비가 되고 미쳐 돌아간다.

 

 

  1. 믿음이 없는 세대여

오늘 말씀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산에서 기도하고 내려오셨는데, 서기관들과 제자들이 변론하고 있다. 발단은 어떤 부자(父子)가 귀신들린 아들을 데리고 와서 고쳐달라는 데 있었다. 애 아버지의 기대와는 달리 제자들이 아이를 고치지 못했다. 예수님은 이런 증상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물으시고 더러운 귀신을 고쳐주셨다.

 

마가가 오늘의 본문을 통해 복음을 전하면서 특별히 의도하는 바가 있다. 예수님께 이런 치유와 축귀의 능력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왜 제자들은 고치지 못했으며 서기관들과 논쟁에 빠졌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왜’라는 물음 보다 더 궁극적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 묻고 있는 바가 있다.

 

1) 왜 고치지 못했는가? 예수님이 아니기 때문인가? 비유컨대 예수님은 의사이고 제자들은 간호사와 같은 존재여서 인가? 복음은 이렇다. 예수 믿는 자에게는 예수의 능력이 있다. 6장에 보면 파송받은 제자들이 모든 촌과 마을에서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쳤다.”(13)고 증거하고 있다. 예수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항복하고 하늘의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깜짝 놀랄만한 경험과 체험들이 있었다. 그런데 귀신들린 아들을 고치지 못했다. 그리고 서기관들과 논쟁에 빠졌다.

 

19절을 보면 주님은 “믿음이 없는 세대여”라고 말씀하고 있다. “믿음이 없는 제자들아, 혹은 사람들아.”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신다. 사실 이 마디는 평소 주님께서 전도여행을 다니시면서 자주 하셨던 말씀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어도 보지 못하고, 좋은 소식을 들려주어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런 탄식으로 호소하셨다.

주님은 귀신들린 아이를 보면서 한 시대상을 바라보셨다. 우리가 보기에도 이 모습이 그 시대를 얼마나 닮았는가? 세상의 악한 영, 거짓된 영, 더러운 영에 사로잡혀 고통을 당하는 사람의 모습.

 

김남주 시인의 ‘어떤 관료’라는 작품이 떠올랐다.

관료에게 주인이 따로 없다! /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

(중략)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

한결같이 그는 관리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

 

고은은 ‘자화상’에서 “일본 놈 보다 더 일본 놈인 우리 동네 천석꾼 지주네”라는 시구(時球)를 통해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럽게 당한 수탈과 착취를 고발하고 있다. 어머니는 날마다 땡볕에 김매주고 돌아왔다. 등잔불 석유도 없이 말이다. 손에 든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는 말이다. 아버지는 소작료와 공출을 내고 나니까, 지푸라기만 남아있었다.

 

며칠 전 신문에 어느 편의점 한 달 매출과 지출을 비교해보니까, 매출은 4천만 원이 넘는데, 임대료와 본사에 내는 금액과 인건비를 빼고 나니 10여만 원 남는다는 기사가 실렸다. 기사의 뉘앙스는 인건비가 50만 원 정도 올라서 폐업을 고려해야 할 지경이라는 방향으로 써서, 어처구니 없다는 댓글들이 많았다. 50만원 오르지 않았다면 고작 60만원 버는 건데, 더 큰 문제는 딴데 있는데, 왜 자꾸 인건비 상승이 원인인 것처럼 기레기짓 하느냐는 댓글들이었다.

 

‘팍스 로마나’를 표방하던 사회의 이면에서 수탈과 착취를 당하고 고통당하던 것을 생각해보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관료였다. 세리들은 로마인들 보다 더 악랄한 로마인이었다.

 

그런 세대 속에서 서러움을 당하고 상처와 고통을 당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비애가 읽혀진다. 귀신들린 아들은 사실, 하나님이 찾으시는 하나님의 자녀나 다름없다.

 

2) 그렇다면 마가의 궁극적인 물음은 무엇인가? 예수의 능력을 잃어버린 현재의 신앙인들이 신앙과 믿음을 회복하며 진정한 복음을 위해 애쓸 생각은 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과 변론이나 벌이고 있는 모습은 아닐까? 진부해지거나 오히려 교회가 거짓이 되고 가짜가 되어 세상의 악한 영이 붙들고 있는 질병을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1. 믿음 없음을 도우소서.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22)

자녀가 귀신에 붙들려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불과 불속으로 뛰어들 때, 이 아버지는 얼마나 노심초사했을까?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이요, 아픔이다.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거든.” 그 때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믿음이 없거나 연약한 이의 용기를 북돋고 힘을 주시기 위한 말씀이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예수님은 연약한 믿음을 도우시고, 믿음으로 붙들기를 바라시는 분이시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탄식하고 질책하시고 꾸짖으시는 것 같지만, 우리가 믿음과 용기를 내어 ‘예수의 능력’을 행사하기를 바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 그의 믿음이 약했다. 모세의 손에 든 것이 무엇인지 묻자, 지팡이뿐이라고 대답했을 때, 그 지팡이를 던지라고 했다. 지팡이가 곧 뱀으로 변했다. 상상도 못했던 하나님의 증표였다. 기드온을 부르실 때도 마찬가지다. 기드온이 양털로 하나님을 시험했다.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이 말라 있었다. 다시 한 번 시험했다. 이번에는 이슬이 주변에는 있고 양털만 말라 있었다. 주님께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을 때, 그 가진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다. 한 아이가 내민 오병이어를 가지고 왔을 때, 장정의 수만 해도 5천 명이나 됐다. 그리고도 12광주리가 남았다.

 

주 중에 신기한 일이 있었다. 한 무명의 성도가 거금을 헌금했다. 믿음이 약하니 주님께서 도우신다.

 

 

  1.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27절을 보니, 주님께서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일어섰다. “귀신아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선포하셨을 때, 아이는 죽은 것 같이 쓰러졌다. 사람들은 아이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명의 주님이 붙잡으시니, 그가 깨어 일어난 것이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주님이 하심으로 죽은 것 같이 되었고, 끝난 것 같게 되고, 소용없는 것 같이 여겨질지 모르지만, 아니 그렇게 될 것 같지만,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사모하며 의지할 때,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도우신다. 또한 우리가 주님을 통해 믿음으로 헌신 할 때, 주님의 나라가 이루어짐으로 복 주신다.

 

오늘 결단하고 사모할 내용이 있다.

28절. 제자들이 그 능력에 대해서 묻는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귀신들린 아들, 아버지, 제자들은 누구인가? 사실 아무런 능력이 없는 땅의 사람들일 뿐이다. 내세울 것 없고, 힘이 없고 연약한 존재들일 뿐이다. 그런데 기도하며 소망을 찾고 기도하며 예수를 붙들며 기도로 주께 간구함으로 주님이 손을 붙드시고 일으키신다.

여러분에게도 이와 같은 믿음이 있기를 바라신다.

 

이 진짜와 가짜가 뒤바뀌고 거짓이 진실을 대신하며 병들고 신음하는 사회를 위해 기도해야겠다. 우리 교회가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맡겨진 사명을 다할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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