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3일, 주헌절 후 제 3주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사랑의 하나님, 거룩하게 구별된 주님의 날에 저희를 부르셔서, 예배의 자리에 참여하게 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계속된 겨울 가뭄으로 인해 메마른 대지를 적셔 줄 단비를 기다리는 때에, 은혜의 단비를 사모하며 주님 전에 나왔사오니, 사모하는 영혼에 주어지는 놀라우신 은혜가 충만하게 하여 주시고, 성령으로 저희와 함께 하셔서, 저희 예배가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12:10)

 

 

  1. 바울은 기독교사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바울과 같은 인물이 없을 정도다.

그는 회심 이후에 믿음이 굳건하고 변함없어 보인다.

믿음의 반석 위에 선 모습이, 고민도 없고, 흔들림도 없고 완벽해보이기까지 한다.

 

  1. 그러나 그도 역시 연약한 인간이었다는 것은 아는가?

① 죄의 유혹에 흔들려 몸부림 쳤고 –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사모하나, 지체 속에서는 죄의 법이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롬7장) ② 그를 이유 없이 거짓된 말로 비방하는 사람들 때문에 괴로워하고, 눈물을 흘렸다. ③ 사람들이 바울을 다른 사도나 리더들과 비교하는 말에 자신도 자랑을 늘어놓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 ‘부득불 자랑하노니’, ‘고상하다고 하는 세상의 많은 지식을 가졌지만 배설물로 여겼다.’,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 고했다. 누군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대접받고 싶지 않을까?! 특히나 그의 사도됨과 영적인 가르침이 무시되고 폄훼될 때, 역설적으로 더 자신을 변호하고 공로나 의를 드러내며 자랑하고픈 유혹이 턱 밑까지 올라왔을 것이다. ;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고후12:5)

 

연약한 인간이었지만, 주를 믿고 그 뜻에 따라 참아내려고 애썼다. 그는 훌륭한 사람이니까,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참아내고 이겨내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연약한 존재’라는 점을 정말 간과해서는 안된다. 어느새 인내와 연단의 기회가 됐고, 그러면서 소망을 가질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본의 아니게 사람하고 비교를 하면 자신이 초라해지고 누추하게 될 때가 있다. 자격지심을 겪기도 하고 열등감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용기를 내어 자신의 연약함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살았다. 그 이유나 비결이 뭘까?

 

 

  1.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사람 앞에 두면, 그렇게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두게 되면, 국면은 달라진다. 사람 앞에 여러분을 두지 말고 하나님 앞에 여러분을 내려놓으라. 바울은 어떤 체험을 했을까?

 

① 그를 부르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의 사도성과 믿음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개는 자신의 의를 드러내려는 교만한 사람들에 의해서였다. 그런데 그것을 알면서 당하는 사람은 상처를 받는다. 인간의 말은 얼마나 무지하고 죄악 될 수 있는가, 우리가 잘 알고 있다. 함부로 말하고, 못되게 말한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으로 더러워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갈1:1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신앙인의 정체성은 사람이 인정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나를 부르신 분 앞에 내가 서서,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주님은 요한복음에서 양은 주인의 음성을 듣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동일하게 우리를 부르고 계시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있는가?

 

② 바울은 부르심에 응답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왜 주님께서 “나를 충성되이 여기신다”고 고백하고 있을까? 바울이 스스로를 높여 잘났다거나 교만하려는 말이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복음과 신앙의 십자가를 바울에게 맡겨주신 이유는 바울이 감당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믿기 때문에 맡겨주신 사역의 십자가가 크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더라도 양해바란다. 정화선 권사님의 어려움을 우리가 잘 알고 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권사님이 당하는 일이 미련해보일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도 버거울 수도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충성되이 여기시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낙망하지 않고, 믿음으로 최후 승리를 이루기를 바라신다. 십자가 뒤에는 결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며 말이다.

 

주님께서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십자가가 미련해보일지도 모르지만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확신하라.

 

③ 그가 자신의 모습을 사람과 비교하며 그 앞에 놓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니, 감사함이 있었다. 무엇인가? 주님께서 바울에게 능한 힘을 주신다는 것이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감사함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공급받는 일은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경험과 체험을 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기독교인은 자기를 자기 영광으로 삼는데 그치지 않고, 자기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자기 영광으로 삼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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