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1월 6일, 주현절, 신년주일
시간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 신년주일에 저희를 부르셔서, 예배의 자리에 참여하게 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희망을 가득 안고 새해의 첫 단추를 채우는 신년주일에,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기로 새롭게 다짐하며 주님 전에 나왔사오니, 저희들의 마음 중심을 기뻐 받아 주시고, 성령으로 저희와 함께 하셔서, 저희 예배가 주님의 영광을 높이 드러내는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5:16)
- 2019년 새해
새해 첫 예배, 신년예배에 나아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의 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한다.
새 날을 허락하신 이유를 생각해보라. 하나님은 우리가 새 마음 새 뜻을 품기를 바라신다. 새로운 시작을 통해 복되기를 바라신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중요하지만, 거기에 머물거나 안주해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장17절)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
하나님은 우리가 거듭나고 변화되고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참 사람이 되는 복을 누리기를 바라신다. 이 시간 이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으라.
용기를 내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버리고 자신감을 가지라. 이전의 부정한 것들, 연약한 모든 것들을 떨쳐버리고 다시 일어서라. 시작하라.
- 지붕을 뜯어낼 만한 믿음
그런데 여러분, 진정한 변화와 새로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할까?
오늘 성경말씀의 내용은 이것이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다시 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기 위해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었다. 네 사람이 중풍병자 한사람을 데리고 왔다. 사람들이 많아 예수님 근처에 갈 수 없었다. 이러면 보통 어떻게 하는가?
함께 온 동료들이 예수님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위에서 아래로 매달아 내렸다. 주님은 그 믿음을 보고, 그의 죄를 사해주시면서 고쳐주셨다.
1) 예수님을 만나는 데에는 다음으로 미루면 안 된다. 이들은 예수님을 만나러 와서 사람들 때문에 길이 막혔다. 그렇게 되면 보통 어떻게 하는가? 다음에 오자는 마음으로 돌아설 수 있다. 실망하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한다.
영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자기 속에서 이런 마음을 갖고 예배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올 때, 지금 당장 결단을 해야하고, 주님을 영접하며 만나야 하지만, 우리 안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주님을 찾아오긴 왔지만 귀찮아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다. 잡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주님의 은혜를 맛보고자 하는 영적인 사모함보다도, 세상적인 재미와 즐거움에 대한 상상에 빠질 수도 있다. 인간적인 생각, 채면, 염려, 근심 때문에, 주님을 만나기 위해 주님께 나아가는 일에, 우리의 마음이 소극적이고 주저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2) 예수님을 만나는 데 있는 방해를 이겨내야 한다. 예수님을 만나려니, 많은 사람에 가로막혀 있었다. 영적으로 마찬가지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이런저런 방해가 있을 수 있다. 핸드폰에 와있는 문자가 방해가 되기도 하고, 예배 전에 불편했던 심기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세상적인 염려, 근심, 걱정을 가지고 예배하려니, 주님께 나아가는데 첩첩산중이다. 그렇다고, 은혜받기를 다음으로 미룬다면 얼마나 어리석은가? 혹은 길이 막혔다고 변명거리와 이유가 있어 다음으로 미룬다면 얼마나 미련한가?
모든 사람이 다 나름의 이유가 있어 주님 앞에 나왔을 텐데, 본인만 더 중하게 봐달라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다. 그런데 아는가? 때로는 이 합리적인 태도와 모습마저도 스스로 주님을 만나는데 걸림돌이 되고 방해가 되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지혜로운 사람들이다. 지금 만나야 한다는 믿음을 잃지 않았으니 말이다.
바디메오는 예수님께서 지나간다는 말을 듣고, 소리질러,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애원했다. 혈루병을 앓던 여인은 주님을 스치기만 해도 낫겠다는 믿음으로 주님의 옷깃에 손을 대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취하는 개여도 좋다는 마음으로 주님을 영접했다. 모두 주님으로부터 문제가 해결되고 풀리는 은혜를 경험했다. 이런 절박함과 사모함을 가지시라.
3) 이점에 주목하라. 이들은 지붕을 뜯어 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렸다. 이들의 지혜는 여기에서 드러난다. 편법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영적인 지혜를 배워야 한다. 주님을 영접하고 맞이하고, 주의 은총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들어갈 마음의 힘이 부족하다면, 자기의 단단한 마음, 변할 것 같지 않은 마음, 내려놓고 싶지 않은 마음을 뜯어내라.
고집스러운 사람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누군 줄 아는가? 고집스러운 사람이다.
수다가 많은 사람이 싫어하는 사람은 누군가? 말 많은 사람이다.
남의 험담을 자주 하는 사람이 제일 경멸하는 사람이, 남을 헐뜯는 사람을 싫어하고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자기에게 걸림이 되는 부분이 있으면, 어쩌면 자신에게 바로 그런 부분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발견하고 인정하는 데서 주님께 나아가기 위한 지붕을 뜯어내는 영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시간 예수님을 만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욕심의 유혹을 좇아 살던 구습인가?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던 습관인가?
예배 전에 예배에 방해가 될 만한 모든 것들은 제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미리 주님 앞에 마음을 내려놓는 예비의 시간, 기도하는 시간이 필요로 한 것이다.
- 진정한 변화와 새로움
중국 내륙 선교의 개척자인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 1832-1905)에게 한 청년이 물었다. “신자가 되는데 얼마나 걸리느냐?”라고 말이다. 여러분 대략 얼마 동안 믿으면 신자가 될 수 있는 것일까?
허드슨은 이렇게 반문했다. “램프 심지에 얼마 동안 불을 붙여야 빛을 발합니까?”
그러자 청년은 “그야 심지에 불을 붙이는 순간부터 빛을 내지요?”라고 답했다.
테일러는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구원하셨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새로운 삶에 비친 그 영혼에서 빛이 타오르게 된답니다.”
여러분의 심령에 하님의 구원을 새롭게 깨닫는 은혜의 불꽃이 타오르길 바란다. 그리고 만방이 그것을 알게 되는 축복을 누리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