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6일, 대림절 제 3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비추시는 사랑의 하나님,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세 번째 주일에 저희를 부르셔서,
예배의 자리에 참여하게 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깊어가는 겨울의 추위가 우리의 온 몸을 파고든 때에,
따뜻한 주님 안에서 참 평안을 누리고,
주님께서 주시는 희망으로 힘찬 발걸음을 내딛기를 바라며,
주님 전에 나왔사오니,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영적인 온기와 힘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성령으로 저희와 함께 하셔서,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1:13)
- 공명
이 시간 좋으신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축원한다.
우리는 강림절을 보내고 있다. 강림절은 주님의 오심을 소망하고 기대하며 준비하는 기간이다.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굽은 길을 곧게 하라.’ 광야에서 예언자들의 선포와 외침이 메아리처럼 퍼졌던 것처럼, 오늘의 시대와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쩌렁쩌렁 울리는 것 같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잉태된 사건은 성육신 사건이다. 말씀이 육신이 된 사건이다. 말씀에는 뜻, 의지, 지혜, 섭리, 권위 있는 존재의 법 모든 것을 망라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된 사건은 하나님이 인간의 몸 안에서 어떻게 현존하시는지를 일깨우는 중요한 사건이다.
저는 이것을 공명이라는 사건으로 이해하고 싶다. 공명이란 무엇인가?
철재로 된 구조물이 파도처럼 출렁이고 마치 단체줄넘기를 하는 줄처럼 요동칠 수 있을까? 아마 상상할 수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1940년 11월 7일 미국 워싱턴 주 타코마 해협(Tacoma Narrows)에 놓인 타코마 다리가 무너졌다. 190km/h의 강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했다. 그런데 약 70km/h에 불과한 바람에 붕괴 됐다.
(영상시청)
거대한 철구조물로 만들어졌다. 그 단단한 철구조물이 이렇게 휘청이다가 끊어지리라고는 아무도 상상 못했을 것이다.
이 다리가 무너진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물체는 각각 고유한 진동수가 있는데, 그 진동수가 맞으면 크게 진폭 되는 것이다. 이것을 공명현상이라고 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라고 말씀하고 있다. 성육신 사건을 달리 고백한 것이다.
성육신 사건이란, 인간이라는 존재의 진동수에 하나님께서 그 진동을 맞추신 사건이다. 인간은 죄와 욕심과 폭력과 거짓, 허영과 자만에 관심하며 진동을 맞추어 산다. 간단히 죄가 진동한다. 그러다가 파멸하고 멸망한다. 그런데 우리 안에 구원의 능력과 복음이 진동하도록,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진동하도록, 그 진동수를 바꾸시고자 주님이 화육하셨다.
- 우리에게 공명을 일으키실 수 있는 분
천사는 마리아에게 아기를 잉태했음을 알렸다. 처녀에게서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지만, 누가복음은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다(눅1:37)고 말씀한다. 마리아의 남편이었던 요셉은 마리아와 조용히 파혼하고자 했으나, 성령은 요셉에게도 분명한 믿음과 확신을 주셨다. 동방의 박사들은 천문의 별들을 관찰하는 중에, 그리스도가 나실 징조를 보고 아기께 경배하기 위해 별을 따라왔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예수는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한 사람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런데 그 안에,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한 인간(100%) 안에 하나님이(100%) 진동하고 계셨음을 증거하는 사건이다. 진동은 사방에 퍼져가는 힘과 능력이 있는 것처럼, 믿는 자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과 나라와 뜻이 전파되고 퍼져나가는 것이다.
강퍅한 우리의 마음이나 심령은 무엇인가? 돈으로도, 율법으로도, 학식이나 개인의 수양으로도 변화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탄식했다. 또다시 죄의 본성으로 돌아가기 일쑤이다. 바울은 그것을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우리 역시 조금만 자신을 성찰하는 사람이라면 아는 바다. 우리를 참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에 진동을 일으키고자 사람의 몸을 입어 세상에 오셨다. 죄와 사망의 다리를 부수고 생명과 구원의 새다리를 놓기 위해서 말이다. 우리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은총이 새롭게 시작된다. 이 시간 그 은혜가 충만하기를 빈다. 여러분 안에 주님의 새로운 은총이 시작되고 새로운 삶의 진동이 넘치시길 빈다.
- 공명의 능력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진동하면(역사하시면) 못 이룰 것이 없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주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과 뜻이 맞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역사가 일어난다. 그것을 믿음으로 우리를 주님께 맞추는 것이 바로 순종이며 충성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라.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장정만 5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먹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현실과는 정 반대의 사건이 일어났다.
바람과 바다라도 주님께 순종하는 것을 보라.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평강을 바람과 바다가 빼앗기는커녕, 순종하듯, 잠잠해졌다.
병자가 낫고 치유되는 것을 보라.
귀신이 쫓겨 가고 사탄의 권세가 하늘에서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보라.
예수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항복했다.
초대교회에서 박해와 핍박이라는 어려운 상황이 있었지만 믿는 자들이 더욱 늘어갔던 것을 보라. 예수님의 부활승천 이후에도 여전히 복음은 전파되고 퍼져갔다.
하나님의 능력이 진동하는 역사들이다.
그리고 주님을 영접하고 믿는 자들을 통해서 일어났다.
사도행전은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갔다(행6:7)고 전하고 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심령 가운데에서도 모든 것이 완전히 뒤바뀌는 변화와 새바람의 역사가 예수 안에서 일어난다.
주님은 겨자씨 같은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주님이 무안을 주시며 시험할 때도, 주인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는 개라도 좋다며 주님의 은혜를 사모할 때 믿음의 역사가 일어났다.
병자들은 예수님의 옷깃에 손만 대어도 낫게 되리라는 믿음을 갖자 정말 역사가 일어났다.
바울은 약할 때 강함 되시는 주님을 경험하고 고백했다.
세상을 구원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9-11까지 말씀을 읽어보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진동의 주파수가 맞자, 지속적인 작은 바람에도 다리가 무너졌던 것처럼, 주님의 뜻에 합당한 적은 믿음에도 주님의 은혜와 능력이 나타남을 믿으라.
예수의 마음을 품으며 강림절을 보내라.
- 겸손히 비워진 마음 – 그 마음은 하나님의 뜻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이다.
- 영혼 구원에 복종하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