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9일, 대림절 제 2주

 

말씀으로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 강림절 둘째주일에 저희를 부르셔서, 예배의 자리에 참여하게 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삼라만상이 겨울 추위로 오그라드는 때에, 따뜻한 주님의 품에 안기고 싶어 주님 전에 나왔사오니, 사랑의 온기로 차디찬 저희의 마음을 녹여 주시고, 성령으로 저희와 함께 하셔서, 저희 예배가 주님께 합당한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참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롬6:11)

 

 

  1. 세상의 자화상

대림절 둘째 주일, 여러분 모두를 축복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신다.

 

시민들은 살기 어렵다고 하는데, 국회의원들의 연봉이 각종 경비포함 이천만원이나 오른다. 최저임금 1만원이 되면 나라가 망하느니 마느니,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질 거라느니, 자영업자들이 몰락하고 말 것이라느니 하면서, 국회에서 얼마나 싸웠는가? 시민들을 심란하게 했다.

소기업들은 한 해의 이익이 3% 줄었다고 아우성이다. 대기업들은 어떤가 봤더니, 영업이익이 40% 증가했다고 한다. 이것에 대해서는 조용하다. 0.3%의 대기업, 한국 기업 영업 이익의 66%를 차지하는 기현상이다.

 

‘국가부도의 날’이라는 영화. 나라가 부도가 나건 말건, 오히려 이슈화 시키고 이용하여, 자기 이득을 챙기고, 나중까지 잘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한다. 사실 이 나라의 경제 모순을 IMF를 통해서 발생했다.

 

이것은 사회의 단적(端的)인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처럼 부조리하고 모순된 세상을 살고 있다. 힘이 있으면 가해자가 돼도 상관없다. 그러나 힘이 없으면, 절대 피해자가 돼서는 안 된다. 그래서 不義에 卑怯해지고 모른척한다.

 

성경은 세상의 모순과 불행과 고통에 대해 죄(罪)가 들어왔고 오염됐기 때문이라고 말씀한다. 단순히 이 세상이 죄로 오염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확히 해야 한다. 사람의 죄악이다. 창세기에서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한탄하셨다고 말씀하신다. 세상이 그냥 죄로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나 자신도 포함된다는 말이다. 나는 상관없는 것이 아니다. 창조 때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감탄하셨던 것과는 상반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분명하다. 원치 않으신다.

 

대림절은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오심을 믿고 준비하는 절기이다. 문제는 인간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사람의 몸을 입으셨다. 인간이 항상 악할 뿐 아니라, 그 때문에 세상이 고통 받기 때문에, 항상 선하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어둠에 빛을 비추시고 죄악을 깨끗케 하시려는 은총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시간 예수님을 복음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복락과 은총이 여러분 안에 역사하기를 주님께서 바라신다. 무엇보다 가정 가운데 화목의 소망과 은혜가 있기를 축원한다.

 

 

  1. 리브가의, 자화상

그래서 야곱의 가정의 모습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삭, 리브가, 두 쌍둥이 형제 에서와 야곱. 가나안은 그들에게 설움과 고통을 당하는 설움의 땅이었다. 헷족속의 아낙네들의 텃세에 리브가가 얼마나 서러웠을 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어려워도 가정 안에서라도 행복이 있고 기쁨이 있으며 즐거움이 있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했다. 형제간의 의리와 우애를 찾기 어려웠고, 화목을 찾기에는 어떤 보이지 않는 벽들이나 간격이 있었다. 헷사람들 때문이라고 원망할 수도 있을 텐데, 단순히 남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이삭의 아내, 에서와 야곱의 어머니였던 리브의 자화상이 있다.

 

“리브가가 이삭에게 이르되 내가 헷 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내 삶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

 

왜 이렇게 말하는가, 자신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고 덮어씌우려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감정이 실린 팩트를 덮거나 간과하고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이상하게 불의한 상황이 전개되기도 한다. 지금 이 경우가 그렇다. 문제가 되는 상황은 이것이다. 야곱이 에서를 대신해서 축복을 받았다. 쉽게 말하면 유산의 모든 권리를 물려받은 것이다. 정당한 과정이 아니었다. 이삭을 속였고 에서를 따돌렸다.

형제 간의 비극이 발생하는 위기에 처했다. 때문에 리브가는 야곱을 오라비 라반이 있는 하란으로 멀리 피신시켜야 했다. 사실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리브가 자신인데, 자신만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갑작스레 야곱이 떠나면 어떻게 되는가? 문제가 더 커지고 붉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유와 명분이 필요했다.

 

리브가가 이삭에게 하는 말을 통해서 어떻게 내용이 바뀌는가?

① 야곱을 삼촌 집에 보내는 이유는 ‘피신’이 아니라 ‘처자를 구하기 위해서다.’라는 것

② 에서와 야곱을 차별한 것은 어떻게 바뀌는가? 본인이 헷 사람들에 대한 피해자로 바뀌었고, 헷사람의 딸들 때문에 계속된 피해자로 돼버렸다.

③ 그의 불행은 며느리 때문이 아니다. 자신 때문이다. 물론 그간 가나안에 시집와서 당했을 서러움과 상처와 아픔을 ‘그랬을 것이라.’고 이해한다. 그렇다고 그 상처와 아픔이 며느리들에게 투사될 필요는 없었다.

 

여기서 드러나는 리브가의 캐릭터는 무엇인가? 남 탓, 핑계, 원망, 차별, 자기 욕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삭을 속이기까지 했다. 이러면 안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개념조차 없다. 그 안에 연약한 인간의 모습과 죄의 속성이 콤플렉스와 갖은 핑계로 자리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참 인생은 아이러니 하다. 리브가가 야곱을 더 사랑함으로 차별하다시피 했는데, – 그것이 야곱을 위하는 일이고 자기 마음은 좋았을지 모르지만, 에서나 며느리들이 이런 리브가 때문에 받았을 상처를 생각해보라. –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야곱이 똑같이 당한다. 인간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1. 라반의, 자화상

야곱이 삼촌 라반의 집에 왔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 가만히 살펴보니 리브가를 닮았다. 야곱은 삼촌을 보면서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래서 반갑고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닮아도 너무나 닮았다. 행위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도덕수행능력이라면 그것까지도 비슷하다.

 

야곱이 삼촌의 집을 떠나던 때를 살펴보자. 그곳에서 20년간의 생활이 어떠했는지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심지어 라반의 딸들인 레아와 라헬마저도 넌덜머리를 냈을 정도다.

야반도주 하다시피 한 야곱을 추격하여 라반이 하는 말을 들어보라.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속이고 내 딸들을 칼에 사로잡힌 자 같이 끌고 갔으니 어찌 이같이 하였느냐? 내가 즐거움과 노래와 북과 수금으로 너를 보내겠거늘 어찌하여 네가 나를 속이고 가만히 도망하고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으며 내가 내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지 못하게 하였으니 네 행위가 참으로 어리석도다.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창31:26-29)

 

① 어딜 간다만다 말없이 떠난 것은 사실이지만, 도망하듯 떠났다는 것은 라반이 그 행위를 덧씌우기 위한 말이다. 또 속인 것도 없다. 오히려 라반이 야곱을 얼마나 많이 속이고 말을 바꾸었던가.

② 내 딸들을 칼에 사로잡힌 자 같이 끌고 갔다는 것도 야곱의 행위를 흠집내기 위한 자기 생각일 뿐이다. 딸들마저 아버지 말보다도 야곱을 따라가겠다는 안색이 분명한 것을 보면서, 그 무안하고 민망함을 감추고자 “내가 즐거움과 노래와 부과 수금으로 보낼수도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말이 이미 거짓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29절에서 라반의 말이 이점을 방증해준다. “너를 해할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사실은 그 마음으로 추격해온 것이다.

 

이 말의 의도가 무엇인가? 자신의 잘못을 야곱에게 덮어씌우려는 것이다. 책임을 전가하고 자존심과 체면을 지키려는 것이다.

라반의 캐릭터는 어떤가? 남탓, 핑계, 원망, 차별(아들들과 두 딸과 사위), 거짓, 속임수, 그리고 폭력

 

우리가 이런 말을 할 때가 있다. ‘저 집은 왜 저래?’ 가족들 하는 행동이 하나 같이 똑같을 때가 있다. 리브가와 라반은 오누이관계다. 다른 듯해도, 닮았다.

리브가의 야곱에 대한 편애, 라반의 편애에 야곱은 고통을 받았다. 뿌린 대로 거두고 심는 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다.

 

우리 가정을 하나님의 복을 받는 가정인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가정인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정인가? 두렵다. 나는 누구를 닮았는가? 내 자녀는 누구를 닮았는가? 죄는 유전되고, 그 때문에 고통 받고, 그 저주가 자녀에게 후대에 계속 이어질 것은 아닌가? 오늘 내가 알게 모르게 짓는 죄들이 언젠가 내게, 내게가 아니면 자녀에게 고스란히 돌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해보라.

내가 고통 받는 것, 삶에 발생한 문제는 고스란히 내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내게 책임이 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싫어서, 남 탓, 남 핑계를 대거나 변명하는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서 그 핑계를 남에게 돌린다. 하와는 뱀에게, 아담은 하와에게. 아담은 하와를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하던 사이 아닌가? 하나님은 가인의 예배를 받지 않으셨다. 기도와 간구와 바람대로 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그 핑계를 아벨에게 대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벨을 찾을 때, ‘내가 아벨을 지키는 자입니까?’ 되물었다. 그가 아벨을 죽여 놓고도 말이다. 누군가에게 화풀이를 하고 살인을 저지르고서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한다. 남탓을 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아니 죄악된 인간의 본래 모습이다.

성경은 이런 모습들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 아닌지를 비춰보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1. 예수님과 함께하는 가정의, 자화상

메시야의 오심을 예비하기 위한 말씀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었도다.”(사9:2)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사40:3)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5)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주님 오심을 준비하고 예비하는 대림절 둘째주를 맞이하여, 주의 길을 평탄하게 하라고 음성을 들으라. 바로 우리가 리브가와 라반 남매의 모습처럼 유전된 죄인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아담과 하와처럼 죄가 부끄러워 남탓을 한다. 가인처럼 뻔뻔하다. 우리가 어둠임을 깨닫고 죄인임을 고백하자. 그 지점부터 주님을 영접할 준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고 했는데, 우리 심령에서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는 마음을 갖자. 남탓, 원망, 거짓, 폭언, 진실외면, 예수님의 십자가 거부하지는 않았는가? 우리가 저주받고 죄를 심어 사망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은 죄와 사망에서 놓임 받길 바라신다.

가정에 대해서도 비참함을 가지고 있었다면, 복음을 믿으라.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을 달리 적용하면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 복된 가정, 은혜가 넘치는 가정이 되길 바라신다.

13절,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도 이새의 뿌리에서 났다고 말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가 주님 안에서 회개하고 영접하고 변화되기를 결단한다면, 죄의 유전 속에 이루어진 가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가 역사하는 가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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