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6일 성령강림절 후 14주
좋으신 하나님, 이 시간 우리에게 임하여 주옵소서. 숨가쁘게 돌아가는 세상사에 이끌려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였나이다. 그 가운데 길을 잃고 헤매고 방황하였나이다. 믿음이 없어 광야의 인생길 위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같았나이다. 주여 이 시간 주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우리의 눈을 열어 하나님을 바라보며 긍휼하신 주님의 은혜를 채우게 하소서. 이 예배가 마친 뒤에는 새로운 믿음과 용기로 거듭나게 하소서. 온전히 주님을 찬양하며 예배하는 마음을 갖게 하셔서 당당하게 세상 가운데로 나아가는 주님의 자녀로 서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 다윗의 지혜로운 처신
다윗이 사울의 핍박을 피해 블레셋으로 망명해있을 때의 일이다. 블레셋의 아기스왕은 비록 다윗이 에이스1호였던 골리앗을 쓰러뜨린 적국의 장수였지만 다윗을 받아들인다. 이미 사울과의 일이나 쫓기는 신세와 얼마간의 행적을 첩보를 통해서 알고 있었다. 그의 재주와 능력이 아까웠을 것이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시글락을 주었다. 거기서 용병장수로 적응하며 마침내 자기 사람으로 만들 심산(心算)이었다.
어느 날 아기스가 다윗을 호출한다. 이스라엘과 전쟁 때문이다. 아기스의 정치적 고려는 이것이다. 이번에 다윗을 참가시켜서 ‘이스라엘의 반역자’로 영원히 낙인이 찍히게 하고, 한편으로 그의 충성도를 시험할 수 있었다. 아무리 다윗의 사정을 고려해서 믿으려 한다고 해도 아직도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다윗도 바보는 아니다. 자기에 대한 감시, 불신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아기스와 다른 관료와 장수들을 안심시킬 만한 행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아기스가 다윗을 불렀을 때, 다윗은 한보따리 선물을 들고 왔다.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와 의복 등등, 다윗이 지내고 있는 시글락에서 가져왔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양이었다. 집안을 거덜내오지 않았다면 도대체 이 많은 것들은 어디서 났을까?
아말렉을 쳐서 얻은 전리품이다. 그런데 다윗은 이스라엘 접경에 있는 유다, 여라무엘, 겐 등지(等地)에서 얻은 것이라고 했다. 아기스의 의구심을 따돌리기 위해서이다. 아기스가 본심을 숨기려 해도 반색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자기 동족을 쳤으니, 이스라엘에게 반역자라고 심히 미움을 받게 될테고, 그러면 영원히 그의 부하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아기스는 다윗에게, 부른 이유를 설명한다. 이스라엘과 전쟁을 위해 군대를 모집하고 있으니, 이참에 나가서 싸우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다른 신하와 관료들에게도 신뢰를 주어 더 자유롭고 편하게 살 수 있다는 암묵적인 메시지였다. 그리고 이런 말도 덧붙였다. 다윗을 더 이상 의심없이 영원한 부하로 삼겠다고 말이다.
이 전쟁에 참여하나, 말아야 하나? 어떻게 X맨의 역할을 감당하랴. 난감했다.
그 사이에 성경이 전하는 다른 내용이 있다. 이스라엘의 사울왕은 블레셋과의 전투를 앞두고 무엇을 했을까? 블레셋의 군대를 보고 마음이 답답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아갔다.
사울은 블레셋 군대의 건너편에서 답답하고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고, 다윗은 블레셋 군대 안에서 의심의 눈초리에 대한 답답함과 위기감을 가지고 있다.
사울은 신접한 여인에게 찾아가 가증한 신앙에 마음을 기대고 의지하려고 했는데, 다윗은 누구를 의지하고 기댔을까?
난리가 났다. 아기스의 신하들이 다윗의 참전소식을 듣고. 검증되지 않은 자와 전쟁에 함께 나가서, 그가 반란이라도 일으키고 대적자로 돌변하면 곧 패하고 말텐데, 너무나 위험한 모험이라는 것이다.
아기스는 어쩔 수 없이 뜻을 접고, 헛걸음하게 만든 다윗을 돌려보낸다. 다윗이 이 기회를 놓칠 사람이 아니다. 아기스가 어쩔 줄 몰라 할 만큼 할리우드 액션을 한다. 자기는 전쟁에 나가고 싶은데 왜 막느냐는 식으로 말이다.
홍해 앞에서 추격해오는 애굽의 군대를 뒤로하고 절망으로 울부짖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나는 대목이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어다.”(출14:13-14)
사울은 위기 앞에 그 극복의 방편으로 신접한 여인을 찾아갔지만, 다윗은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시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저 가만히 있었는데도 – 또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피할 길을 내시며, 살 길을 열어주신다. 우리는 사울처럼 성급해하거나 경솔해하거나 조급해해서 그릇된 길을 갈 때가 얼마나 많은가?!
- 다윗에게 찾아온 고난의 역습과 승리
그런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아말렉을 치고 아기스에게 들렸다가 시글락에 돌아와보니, 여기저기 가옥이 불탄 채 연기가 피어오르고, 아직 불씨가 남아 직전에 일어났던 일을 짐작케 했다.
시글락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윗과 부대원들의 처자식들은 다 어디로 갔으며, 누구의 소행이란 말인가?
아무런 단서가 없다. 어디로 갔는지, 추격한다고 해도 잡을 수 있는지, 아무 것도 장담할 수가 없다. 잃어버린 처자식, 생사를 모른 이별은 평생의 원한이 되는 것이란 것을 이번에 남북이산가족의 만남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하지 않았는가? 만약 찾지 못한다면 죽는 게 나을 정도다.
다윗을 따랐던 군사들이 600명 정도다. 이들은 다윗을 얼마나 신뢰하고 목숨 다하여 따랐던가? 충성도가 굉장히 높은 이들이다. 그런데도 6절을 보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했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다른 것은 원망과 불평을 하지 않더라도, 처자식을 이유 없이 잃게 되는 고통은 이마만큼 엄청난 것이다. 모세에 대해서 광야의 백성들이 원망한 적은 있다. 그런데 그럴 때도 돌로 치자 하지는 않았다. 더구나 다윗과 병사들의 관계는 주종관계나 마찬가지다. 자기 주인을 돌로 치자 할 정도라면 그 순간 상실의 고통이 얼마나 큰 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4절은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다고 말한다.”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 것인가? 6절 말씀을 보자.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이 한 문장 속에 뜻밖의 사건사고를 만난 다윗의 난처함, 난감함이 압축돼 있다.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엄청난 위력일 것만 같은 태풍을 만나도 반석이 되시고 산성이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면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연약한지라 아무리 강하고 담대하다고 하더라도, 또 힘과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 순간 마음이 녹아내릴 수 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입성 중에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라.” 가나안 거주민들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던 이스라엘이 근방에 진을 치고 있다는 소식만듣고도 간담이 녹아내렸다고 성경은 증거한다.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 450명과 결투에서 완전 승리를 거두고도 이세벨의 협박에 마음이 무너져서, 광야로 피신하고, 거기서 말라비틀어질 뻔했다.
엘리사의 사환이 아람군대에 겁을 먹었을 때, 엘리사가 기도하자, 그가 보지 못했던 눈이 열리며 불말과 불병거가 엘리사 주위를 두르고 있음을 보았다.
예수님은 검과 몽치로 주님을 붙잡으러 왔을 때, 검을 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지금이라도 주님께서 명하시면 12군단도 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있는 줄 모르느냐고 말씀하셨다.
하나님 안에서 강하고 담대해지는 체험을 하길 바란다. 힘과 용기를 얻고 막막하고 답답한 상황을 이겨내기 바란다. 다윗도 하나님 안에서 힘을 입고 용기를 얻었다. 동일하다. 하나님은 이 시간 우리 모두가 동일한 은혜와 믿음이 있기를 바라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 믿음으로 승리하라
다윗이 아비아달을 불러 에봇으로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 추격하면 따라잡을 수 있다는 응답을 얻었다. 하나님은 응답하시는 분이다. 지혜를 주시고 그 길을 인도하신다. 말씀으로 응답을 받고, 기도하다 응답을 받고, 찬양을 부르다가 응답을 받기도 한다. 하나님은 여러 방법으로 우리에게 응답하신다. 때로는 그것이 긴가민가할 때도 있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말씀한다. 복음을 듣는 자들 모두가 유익하지 못한 결과를 만드는 것은 믿음으로 결부 짓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믿음으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이루고 보이지 않는 증거들을 얻기를 주님께서 기대하신다.
다윗이 군대를 이끌고 일단 막연하지만 추격에 나섰다. 들에서 애굽 소년 하나를 만났다. 그가 병들어 주인이 버렸는데, 다윗이 그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게 했다. 알고 봤더니 그는 며칠 전 시글락에서 있었던 이들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말렉 사람들이 시글락을 침노하였고 불사르고 약탈했다는 것이다. 그가 해결의 실마리가 되었다. 그의 제보로 아말렉을 추격했다. 그리고 결국은 아말렉에게 빼앗기고 끌려갔던 모든 물건과 사람을 되찾을 수 있었다. 성경은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아무것도 잃은 것 없이 모두 찾았다고 증거한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힘과 용기를 얻고 믿음으로 응답을 붙드는 이에게 이와 같은 승리가 있을 줄 확신하라.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서, 삶에서 지도하시고 가르치시고 소망을 주시고 위로를 주시며 복된 약속을 주시는 것을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지 않았는가? 어려움을 당하고 시험을 당하면서 찾아오는 낙심을 이기지 못하고 포기하고 중단하고 마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은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하신다. 힘과 용기를 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