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20일, 성령강림절
성령으로 저희와 함께 계셔서, 저희를 거듭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완전하게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 성령 강림절에 저희를 부르셔서, 예배의 자리에 참여하게 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다소곳이 고개를 든 더운 공기가 온 대지를 휘감는 계절에, 연약한 가슴에 뜨거운 풀무질을 해 주실 성령의 능력을 사모하며 주님 전에 나왔사오니, 불의와 죄악은 불살라지고 성령으로 달구어진 사랑의 마음만 남게 하여 주시고, 성령으로 저희와 함께 하셔서 저희 예배가 주님께 합당한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
- 눈에 보이지 않는 역사
잠 못 드는 밤에, 다윗 성의 옥상을 걸으며 하늘의 수많은 별들처럼 수놓은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했다. 야곱은 잠 못드는 밤에 환상을 보니, 위기의 인생 중에, 천사가 하늘을 오르내리며, 예비하고 준비하는 사다리를 봤다. 물론 히스기야는 앗수르에 의해 에워싸여 밤새 통곡하며 기도했고, 바울과 실라도 깊은 감옥에서 잠을 못 이루고 찬송과 기도로 밤을 지새웠다. 앗수르는 물러갔고, 바울과 실라도 감옥에서 풀려났다.
밤은 모두가 잠 들고, 쉼을 얻는 때이지만, 역사의 변화와 사건은 밤에 시작되고 밤에 일어나는 경우도 많다.
어느 날 밤, 페르시아와 아하수에로가 잠을 들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무슨 번민의 내용이 있거나 심신이 불편해서가 아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밤새 잠이 오지 않았다. 누구나 그럴 때가 있는 것처럼, 우연일까? 그런데 이날 왕이 잠 못 든 일 때문에 벌어진 일을 생각해본다면 역사란 우연 같지만, 우연은 아닌 것 같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이스라엘은 두 갈래의 부류를 이루었다. 한 부류는 고국으로 귀환했다. 그리고 다른 한 부류는 그곳에 남았다. 이들을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라고 한다. 이방 땅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앙을 지키다가 핍박당하고 어려움을 겪은 일들은, 다니엘과 그 친구들의 이야기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에스더는 그 대표적인 이야기이다.
아하수에로 왕의 총애를 받던 하만이, 모르드개만 자기에게 무릎을 꿇거나 절하지 않아 분개했다. 그래서 유대 민족을, 세상에서 멸절시킬 음모를 세웠다. 속달로 여러 지방에 행정명령을 내려, 아달 월 13일 하루 동안에 유대인을 남녀노소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모두 도륙하라고 지시했다.
왕후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암중모색(暗中摸索) 중에, 유다인들과 3일 밤낮을 절박한 심정으로 간절히 금식하며 기도하기로 했다. 무슨 특별한 묘수나 방법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3일이 지나고 기도를 마쳤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공표됐던 조서의 내용이 철회되고 문제가 해결되었는가? 아니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 우리는 그래서 실망하고 낙심한다. 기도의 결과와 능력을 의심한다. 눈에 보이는 것을 보려고 하고, 그것을 믿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서는 우리에게 그렇지 않다고 말씀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역사와 능력이 있다. 믿음으로 참고 기다리며 하나님을 신뢰해야 나타나는 능력과 응답이라는 것이 있다.
-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
유다의 온 백성과 에스더, 모르드개의 기도가 끝날 날, 6장 1절, ‘그날 밤’은 바로 그 밤이다. 자, 그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왕은 잠이 오질 않아, 몸을 뒤척이다가 일어났다. 도무지 더 이상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역대일기를 가져와 읽혔다. 2절을 보자.
“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을 지키던 왕의 두 내시 박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하였는지라.”
세세하게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 중대한 사실을 알게 되었고, 왕은 어떤 보답과 사례를 했는지 물었다.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고발하였으니, 존귀와 관작을 후하게 베풀어도 부족할 판이다. 그런데 아무 것도 베풀지 않았다는 것이다.
왕은 이제라도 당연히 모르드개에게 사례를 하고 존귀와 관작을 베푸는 것이 당연하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의 섭리는 기묘하시다. 사람은 잊는 듯해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
요셉이 감옥에서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주었다. 해석은 정말 딱 들어맞았다. 술 맡은 관원장에게, 풀려나거든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살펴서 풀어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그러나 술 맡은 관원장은 누명을 벗은 후, 이 일을 까마득히 잊었다.
- 더 중요한 일에 사용하신다.
그런데 사람의 시간표에 쓰임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하나님의 시간표에 쓰임을 받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이 일은 시간에 묻히는 듯 했다. 2년 후에, 바로가 묘한 꿈을 꾸었을 때, 그 꿈을 해석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애굽의 왕이 이 일로 고심하고 있을 때, 술 맡은 관원장은 그 때, 일을 기억해낸다. 요셉은 애굽왕의 꿈을 해석해줬고, 애굽의 총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술 맡은 관원장의 머리에 기억되고 진작에 풀려났더라면 어땠을까? 그런데 하나님의 시간표에 기억됐을 때 요셉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하나님께 기억되고 그 시간표에 쓰이는 사람은 그를 통해 그 가족과 나라가 구원을 받는 일이 일어난다. 사람은 잊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실 수 있는 분이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다. 사람은 바쁘고 분주하다보니까, 깜박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더 좋은 때, 충분한 때에,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시려고 기다리신다.
이사야49:15-16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그러면서 그 이름을 주님의 손바닥에 새겼다고 말씀한다.
모르드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시간표에 그는 호출을 받았다. 그리고 하만의 음모 앞에서 유다민족을 멸절시키려는 계획을 꺾으시는데 사용하셨다.
그렇기에, 아하수에로 왕이 밤잠을 자지 못하고, 뒤척이다 일어나 역대 일기를 읽게 된 일이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던 일이요, 기도의 응답이었다.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응답이 속히 없는 것 같고, 기억하지 않으시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정말 중요한 포인트에 응답하신다.
-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
하만을 보라. 겸손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만한 모습이다. 아하수에로 왕이 모르드개에게 상을 베풀 생각으로 좋은 방법에 대해 하만에게 물었는데,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가? 6절 하반절이다.
“하만이 심중에 이르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
그의 말로(末路)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 모르드개를 장대에 달려고 세웠던 그 장대에 하만이 달리고 말았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의 음모를 꺾으시고 그 계획을 비웃으신다.
그래서 잠언3:34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잠언24:1은,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음을 지키는 힘은 겸손함에서 나온다.
오늘 말씀을 통해,
① 길이 보이지 않을 때, 기도하라. 기도함으로 보이는 증거를 찾을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믿음의 용기와 담대함을 얻으라. 주께서 일하신다.
② 참고 인내하며 때를 기다리라. 하나님께서 더 좋은 때에 좋은 것으로 은혜를 베푸신다.
③ 겸손히 주님 앞에 우리의 몸과 마음을 낮추고 살아계신 주님을 인정하는 믿음을 가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