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18일 사순절 제 1주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사랑의 하나님, 사순절 첫째주일에 저희를 부르셔서, 예배의 자리에 참여하게 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입춘을 지나 봄의 기운이 온 누리를 겨울 잠에서 깨어나게 하기를 바라는 때에, 사순절의 의미를 생각하며 주님 전에 나왔사오니,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려고 하는 저희들의 열정을 받아 주시고, 성령으로 저희와 함께 하셔서, 저희 예배가 주님께 열납 되는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쑤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롬6:11)
01_사순절의 의미
오늘은 사순절 제 1주이다. 40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굉장히 중요한 숫자이다. 이스라엘은 40년 광야생활을 했고, 예수님은 40일간 광야에서 금식하며 시험을 당하셨다. 이스라엘의 40년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시간이었다면, 예수님의 40일 금식 기간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에 대한 유혹을 이기신 시간이었다.
사탄이 예수님께 묻는다.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이라는 말로 말이다. 우리의 유혹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자기 뜻과 의대로 행해보시라고 말이다. 그러나 사탄의 유혹이나 시험에 상관없이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예수님은 우리의 그리스도이시다.
사순절은 십자가의 길을 걸었던 예수님의 삶을 따라, 우리 역시 순례하는 시간이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면서, 주님께서 하셨던 일들 속에 우리의 삶과 그 의미를 맞추는 시간이다. 이 기간 검소하고 소박하며 때로는 자신을 절제하면서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
02_영화 : 인생은 아름다워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에 영화 한 편을 봤다. “인생은 아름다워”였다.
내용은 이렇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히틀러가 유태인을 학살했을 때, 귀도라고 하는 인물이 네다섯 살 정도 되는 아들을 숨겨두면서, 아들에게 이런 상황을 숨바꼭질 게임하는 거라고 설명한다. 1,000점을 먼저 얻으면 탱크를 선물로 받게 된다고 말해준다. 순간순간 아이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실망하거나 낙심하여 두려워하지 않도록 재치 있게 대처해나간다.
독일이 패전하고 마지막 모든 증거를 없애려고 할 때, 아들을 작은 캐비넷에 숨겨두고, 아내를 찾으러 갔다가 발각되어 총살된다. 아들에게는 지금 점수가 940점이고 일등으로 달리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잘 숨어 있으면 1등으로 탱크를 선물로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해준다. 그러니 아무리 소란스럽고 시끄럽더라도 여기서 나오면 안된다고 말한다. 발견되면 1등에게 주는 탱크를 뺏기기 때문이다.
다음날 모든 상황이 조용해졌을 때, 아이가 캐비넷에서 나오는데, 그때 게임에서 바라던 대로 연합군 탱크가 앞에 도착했다. 김용택의 시 ‘달’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유태인들이 귀환하는 장면이다. 아이가 성장한 뒤에 이때를 회상하면서, 어릴 때는 몰랐던 아버지의 선물에 감사하는 말을 하면서 끝을 맺는다.
앞산에다 대고 큰소리로, / 이 세상에서 제일 큰 소리로 /
당신이 보고 싶다고 외칩니다 / 그랬더니 / 둥근 달이 떠올랐어요.
(김용택, ‘그대, 거침없는 사랑’, 푸른숲)
가슴을 울리는 명장면들이 있다. 특히나 마지막에 독일군에게 끌려갈 때, 정말 게임을 하는듯하게 아이 앞에서 익살스럽게 붙들려가는 장면은 너무나 인상 깊다. 사랑하는 자녀 앞에서 아버지의 헌신과 고난은 그 자체로서 감동이고 눈물이다.
명대사가 있다. “아들아 아무리 처한 현실이 이러해도 인생은 정말 아름다운 것이란다.” 2차 세계대전과 유태인 학살이라는 고난을 겪었던 아버지가 자녀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다.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제목에서 어쩌면 인생은 아이의 아버지, 귀도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03_고통의 영광
사순절에 임하면서 이번 사순절에 주실 은혜는 무엇일까, 묵상하는 중에, 하나님의 마음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아, 아무리 처한 현실이 이러저러 해도 인생은 정말 아름다운 것이란다.”
세상은 어둡고, 악이 가득한 것 같아 보인다. 고난이나 고생이 끝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마치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의 암울한 현실처럼, 죽음의 형장으로 아무 죄없이 이슬처럼 끌려가는 인생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가진 것 없고 힘이 없으면, 억울하다고 말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요, 안개처럼 흩어지는 인생이 우리가 처한 상황인지도 모른다.
영화의 제목을 조금 패러디해서, 오늘의 메시지를 보자면 이렇다. “현재는 고통스러워도 하나님의 영광은 정말 아름다운 것이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십자가 길에 동참하면서 그 고난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라지만, 달리생각하면 우리가 걷고 있는 인생의 고생, 고통, 고난의 길에 십자가 지신 주님께서 함께 동행하시면서, 고생이 고생으로 의미없이 끝나거나 허비되는 것이 아니라, 의미있고 가치있는 아름다운 길로 바꿔주시는 은혜를 누리게 하기 위한 초대이다.
04_하나님 사랑
병자들이 겪었을 고생을 생각해보라. 진통제 없이 괴로워하는 가족의 신음소리를 듣느라 마음이 울적하고 지친 사람을 생각해보라. 로마제국 치하에서 삶이 몰락하고 권리를 박탈당했던 이들을 생각해보라. 수탈과 핍박을 당하면서 우리에게 볕들 날이 있을지 물어야 했던 사람들의 한숨의 무게를 생각해보라. 폭동으로 인한 유혈사태로 흉흉해짐 민심과 경비병에게 붙들려 이유 없이 매질을 당해야 했던 인권유린도 생각해보라. 눈에 보이는 패륜만 패륜이 아니다. 부모를 모시는 것을 외면하기 위해 ‘고르반’이라는 종교적인 관습을 명분으로 내세워 합리화한 자기기만의 패륜도 패륜이다.
성경에 보면 특히 병자들, 귀신들린 자들, 앓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의술이 부족하고 유전적인 질병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마 만큼 삶의 기반이 무너지고, 마음의 병에서부터 면역력이 약해지고, 혹사당하는 삶에서 질병은 재앙처럼 다가왔다. 인생을 산다는 것이 정말 척박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 무슨 꿈과 소망을 가질 수 있었을까?
날 때부터 맹인이 된 사람에 대해서 사람들이 이것은 누구의 죄 때문인지 물었을 때, 주님은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말씀하셨다. 고난이나 고통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고 말씀하셨다.
저는 여기서 예수님의 투지를 찾는다. 인생의 절망과 고통이 중하다고 하더라도 ‘내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며 살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 아시느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힘과 용기를 내는 인생이 되기를 가르치셨다. 아니 포기하고 절망하기 쉬운 인생과 사람들을 애써 붙드셨다.
의인을 찾으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찾으러 오셨다는 주님의 말씀 속에서는 그 무엇도 하나님에게서 끊을 수 없는 절대적인 사랑을 발견한다. 하나님의 용서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순종과 충성을 배우기도 한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실 때에는 세상의 올무에서 자유케 하시는 용기와 담대함이 우리에게 옮겨 붙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인생에서 불행을 만나고 원치 않는 일을 만났을 때, 그것은 저주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꽃처럼 피어날 섭리를 찾는 속에서 승리가 있고 기쁨이 있다. 하나님의 아들은 십자가의 길을 통해서 우리의 광야와 같은 메마른 인생을 충만하게 하시기 위해 찾아오신다.
05_이국종 교수 이야기
우리가 잘 아는 어떤 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의 아버지는 6.25 전쟁에서 한쪽 눈을 잃고 팔다리를 다쳤다. 2급 국가 유공자였다. 그 때문에 친구들이 ‘병신의 아들’이라 놀렸고, 가난은 그림자처럼 그를 둘러쌌다.
중학교 때 축농증을 심하게 앓아서, 병원을 찾았는데 국가 유공자 의료복지카드를 내밀자 간호사들의 반응이 싸늘했다. 다른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들었고 몇몇 병원을 돌았지만, 문전박대를 당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이 사회가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얼마나 냉랭하고 비정한 곳인지 잘 알게 됐던 것 같아 서러웠다.
자신을 받아 줄 다른 병원을 찾던 중 그는 자기 삶을 바꿀 의사를 만나게 된다. ‘이학산’이라는 이름의 외과 의사였는데, 그는 어린 이국종이 내민 의료복지카드를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가 자랑스럽겠구나.{”
그는 진료비도 받지 않고 정성껏 치료하곤, 마음을 담아 이렇게 격려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그 한마디가 그의 삶을 결정했다.
‘의사가 되어 가난한 사람을 돕자, 아픈 사람을 위해 봉사하며 살자.’
그를 대표하는 삶의 원칙도 그 때 탄생했다.
“환자는 돈 낸 만큼이 아니라, 아픈 만큼 치료받아야 한다.”
누구의 이야기인가? 이국종 교수에 대한 이야기이다. 불행한 현실과 가난에 대한 설움은 아름다운 정신과 마음을 가진 의사를 탄생시키지 않았던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 이다. 주님은 우리의 고난과 고생이 누군가에 대한 적개심이나 악의, 혹은 원망과 자괴감으로 점철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고통을 당하신 그 모진 시련 속에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꽃피어나길 바라신다.
22절을 보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러나 18절은 우리에게 매우 강한 메시지를 들려준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느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길 위에는 무엇이 놓였는가? 그리고 우리의 인생길 위에 고난은 어떤 하나님의 영광으로 바뀌기를 원하시는가? 이 사순절 기간 내내 묵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