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내게 오시네(베드로후서1:16-18)

주님 내게 오시네(베드로후서1:16-18)

 

2017년 2월 26일, 주현절후 마지막 주, 변화주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을 부르시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사랑의 하나님, 주현절 후 마지막, 변화주일에 저희를 부르셔서, 예배의 자리에 참여하게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봄이 다가오는 소리에 모든 피조물이 설렘을 갖는 것처럼, 우리에게 임하실 주님께서 참된 기쁨과 즐거움을 주실 것을 기대하며 이 자리에 나왔사오니, 주님의 온기로 가슴을 채우게 하여 주시고, 성령으로 저희와 함께 하셔서, 굳세게 주님의 영광을 높이 드러내는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거룩의 말씀 :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딤전1:15)

 

  • 뜨거운 은혜체험의 기억

신앙인들에게 성령체험은 얼마나 중요한가? 그것은 광신자들이 말하는 비이성적이고 몰상식한 것들과는 다르다. 영적인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성경이 증언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체험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부활하신 주님께서 내게 찾아오시는 경험, 그것이다. 그 외에 다른 어떤 이상한 것, 다른 복음이란 없다.

저주 아래 놓였을 것만 같던 내 생애에 주님 찾아오셔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경험하게 한다. 불안케 하고 두렵게 하고 심령을 어지럽히는 마음이 아니라 평안을 주신다. 담대함, 용기, 소망을 주시며 감사와 능력도 주신다. 사람에 따라서는 정말 뜨거운 체험이다. 혹은 시원한 체험도 있다.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리라.” 하셨던 것처럼. 그 감동으로 복음을 믿게 되고, 모든 하나님의 섭리가 구원과 연관되어 있음을 깨닫게 한다.

 

오늘은 교회력으로 주현절 후 마지막 주이자, 변화주일이다. 성서일과가 전하는 구약의 말씀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마주한 장면을 전하고 있다. 복음서는 주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올라가신 산에서 예수님의 얼굴이 해 같이 빛나고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던 장면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서신서에서는 그것을 매개로 확신을 주기 위한 오늘의 말씀이다. 베드로는 홀연히 빛난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신 하늘의 음성과 마주했다. 공관복음서는 일제히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는 사건을 통해서 증거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여러분 이것이 보여 진 사건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럴 수도 있겠지만, 더 정말 중요한 것은 체험되어지는 사건이다. 눈에 보여 지는 사건으로만 이해하려다 보니까, 체험되어지는 사건으로서의 이해가 간과되었다.

 

우리 안에 온갖 더러운 것이 많다. 어둠과 음란과 욕심과 미움과 시기와 분쟁과 연약함과 교만.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악들이다. 그랬던 우리가, 어쩌면 자신이 얼마나 한심스러운 존재인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어리석던 우리가, 이러한 체험을 하고, 감히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되며, 예수님을 통해 사랑과 은총을 누리게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굳게 믿기를 바라신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굳게 믿는 주님은 그 무엇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 놓을 수 없음을 확신하기를 바라신다. 성령은 이 예배 가운데 임재하셔서, 이 진리를 확신하며 우리 모두가 담대한 믿음과 용기를 갖기를 바라신다.

 

 

  1. 믿음이 흔들릴 때

베드로가 변화산에서 경험했던 것을 다시 한 번 확신 있게 전하고 있는 이유를 살펴보라. 17절.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여기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보여 지는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체험으로서의 사건.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복음서에서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다고 하는 시각적 표현이, 여기서는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다고 고백적 표현으로 바뀌고 있다. 물론 고백은 체험과 확신을 바탕으로 한다.

 

자 보자.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때가 숱하게 있다. 인생의 풍파나 고난이 누구에게나 닥친다. 그 때마다 세상적인 가르침이나 사고방식은 우리의 믿음을 방해하거나 저해한다. 베드로 역시 그랬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를 굳게 지켜주었던 것은 변화산에서의 경험과 성령을 통해 경험했던 내적 확신이었다.

 

바울도 마찬가지였다. 갈라디아에 보내는 편지에서 사도행전에서 증거하고 있는 것을 전하고 있다. 다메섹으로 가던 중에 예수를 만난 사건이다. 예수 믿는 이들을 결박하려고 체포영장을 받아 가는 도중이었다.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었다고 간증한다. 베드로 역시 16절에서 그의 체험은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다른 것이 아니라, 직접 예수님의 크신 위험을 본 자라고 말하는 것과 맥락이 같은 것이다. 그마 만큼 체험은 확신과 믿음을 더해주었다.

그리고 바울을 통해서 우리에게 더해주는 믿음이 있다. 무엇인가? 로마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8:16절에서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리와 함께, 우리 역시 하나님의 자녀라는 깨달음을 더해준다. 성도들은 이 체험 때문에 모진 시련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승리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여러분도 승리하라. 하나님은 성도된 이들의 믿음을 굳세게 하기 위해서 이런 체험들을 주신다. 이 체험을 뜨겁게 사모하라. 그리고 그 뜨거운 체험을 기억하라.

 

 

  1. 계시의 영

이단이나 사이비들은 신앙인들의 의심을 파고든다. 그리고 미혹케 만든다.

오늘 말씀 바로 뒤에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교회와 성도들을 흔들었다. 외부에서 유입되기도 했지만, 믿음이 연약해졌을 때, 자생적으로 발생하기도 했다.

 

어제 지방회가 있어서 참석했다가, 암환우만을 위해서 특수목회를 하는 목사님을 만났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믿음이 좋다던 신자들이 절박해지니까, 이단이나 사이비에 발을 담그는 일들이 많이 생기더라는 것이다. 차라리 신앙이 없던 분들은, 오히려 주님을 더 잘 믿고 한눈을 팔지 않는데, 조금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한눈파는 일이 생긴다고 했다.

건강문제만이 아니라 인생에서 여러 어려운 문제가 생기고, 환난을 만날 때, 사람 누구에게나 주에 대한 의심이 찾아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을 이기지 못하면 믿음에 파선한 자와 같이 되는 것이다.

 

주의하라. 영지주의자들이나 이단, 사이비들이 말하는 ‘계시의 영’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에 있지도 아니한 어떤 몰상식한 지식을 신비화하는 이상한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의 비밀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내 안에, 내 삶 속에 찾아오시고 개입해 오심을 알게 하는 것이다. 에베소서 1:17-18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뜨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베드로후서2:1 하반부를 보라. 그들의 말은 옳은듯하지만 결정적으로 ① 주를 부인하고 주님께서 ② 다시 오심에 대한 내용을 왜곡 시키는 사람들이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계시의 영은 하나님의 아들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여 찾아오시고, 그 눈을 밝히시는 것을 말한다.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말이다. 주를 부인하게 하고 다시 오심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렇다는 것을 알게 하신다.

 

감사한 것은 이런 체험과 확신을 사모하는 자에게 주님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은총을 허락하신다는 것이다. 구하는 자에게, 찾는 자에게, 두드리는 자에게, 가장 좋은 것, 성령을 주신다고 말씀했다. 누구든지 사모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이 체험을 선물로 주신다. 인간의 공로와 부담과 무거운 짐을 지우게 해서 자격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바라고 사모하는 자에게 주신다.

 

 

  1. 선물을 주시는 이유

하나님께서 이런 체험과 은혜주심을 기꺼워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환난과 시련 속에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이, 부활하신 주님을 흔들리지 않고 확신 있게 믿고 용기를 내기를 바라신다. 그리고 믿음이 파선당하는 것에서 지키시기 위함이다.

12절에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말씀했다. ‘항상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마귀는 신앙인의 의심을 파고들어 불신앙을 갖게 하고 낙망케 함으로 그 마음이 도둑질한다. 그러나 주님은 그 마음이 도둑맞지 않도록 연약한 우리의 믿음을 도우신다.

 

둘째로, 예수님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를 바라신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닮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고귀한 인품이나 자랑할 만한 성품을 위해서가 아니다. 복되게 하기 위해서 이다. 변화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좋은 선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자신이 변하고 삶이 변하고, 복되게 살아가는 것, 얼마나 좋은 선물인가? 최고의 선물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어릴 때, 친구들과 싸우다가도, 어머니에게 꾸중을 듣거나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학교 시험을 망쳐서 낙심했을 때에도, 신기하게 예수님을 찬양하고, 그 이름을 부르면, 금새 모든 것을 싹 잊고, 기쁨과 즐거움이 넘쳤던 기억이 난다. 예수님의 이름만 부르고 생각만 해도 힘이 나고 위로가 됐던 적이 있다.

 

세 번째는 부르심의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신다. 14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이라고 했다. 요한복음 21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장래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암시하는 것이다. 마태복음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베드로에게 “교회의 반석”이 되는 사명과 소명을 주셨다.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사명을 주신다.

3년 전 딱 오늘이다. 2014년 2월 26일 날짜도 잊지 못한다. 생활고에 비관해서 송파 세모녀가 자살했다. ‘마지막 집세입니다.’ 집주인에게 남겨놓는 메모였다. 밀린 월세와 공과금을 마련하고 결국 목숨을 끊었다. 자살하는 마당에 그런 것까지 생각하다니, 얼마나 깨끗한 양심을 지녔는가!

그러나 충격이었다. 그때, 정말 어려운 처지와 형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서 회개하는 마음이 든다.

그때, 어쩌면 나의 목회의 전환점과도 같다고 말할 수 있다. 목회는 율법이 아니라 복음이라는 것을. 고통당하고 절망하고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울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지극히 관심을 가지고 계신 주님의 마음이 읽혀졌다. 그해 세월호 사건이 있었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주님께서 부탁하신 일에 많은 용기와 힘을 내지 못했다.

정말 어려울 때, 힘들 때, 절망하고 낙망했을 때, 저를 일으켜주신 분은 주님이시다. 그래서 주님은 이런저런 위기와 환난으로 심령이 병들고 절망으로 죽어가는 영혼에게 복음이 전해지길 원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주님은 계속적인 기회를 주시고 복음을 전하도록 사명을 주신다는 믿음이 있기에 오늘 내가 목사로서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1. 결론

가장 좋은 항암치료제는 무엇일까? 자기면역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체험하는 순간 그 면역력이 급상승한다. 어제 만난 목사님의 증언도 그러했다. 우리 인생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영적인 면역력이 높아지고, 그래서 큰 시험도 능히 이기고 승리하며 강건케 된다.

내 생각대로 안 되는 것 같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히 믿으라.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부활하신 주님은 여러분과 함께 계신다. 그러기에 더 좋은 주님의 섭리와 역사는 분명히 있다. 그리고 인생의 무수한 위기와 절망에서 일어나 승리하길 바라신다. 또한 전도하길 바라신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신 한번 말씀하신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주님이 여러분과 동행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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