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25일 성탄주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비추시는 사랑의 하나님, 아기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복된 주님의 날에 저희를 부르셔서, 예배의 자리에 참여하게 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온 누리에 임마누엘 하나님의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참 평안을 누리고, 주님께서 주시는 그 소망과 희망으로 힘찬 발걸음을 내딛기를 바라며, 주님 전에 나왔사오니,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능력을 힘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성령으로 저희와 함께 하셔서, 저희 예배가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2:11)

 

 

성탄절이자 송년주일에 주 앞에 나온 여러분 모두를 축복한다.

 

마리아와 요셉은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을 통해 나신다는 천사의 소식을, 받아들이기 힘든, 아니 받아들일 수 없는 엄청난 사건이었지만, 용기 있게 받아들였다.

동방의 박사들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고하는 별을 보고 먼 길을 찾아왔다. 밤이 깊고 어두울수록 별빛은 더욱 빛났고, 혹독한 겨울밤 하늘일수록 별들의 찬양은 밝고 화려했다. 무지한 인간은 그 의미를 모를 뿐이다. 그러나 동방의 박사들은 그 별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오늘 아침은 하늘의 비밀이 해제된 아침이다. 마치 자물쇠가 열리듯 말이다. 첫째는 ‘나사렛 사람이라 칭함을 받을 것이다.’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이다.’라는 예언이 어떻게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을까? 임산부가 일부러 먼 길을 여행하여 다른 지역에서 애를 낳지 않는 한, 그리고 상식적으로라면 그럴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오늘날처럼 교통편이 좋아서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상황을 연상하면 안 된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렀을 때, 적잖이 당황했다. 예루살렘 성 안, 왕가에는 어느 누구도 출산을 앞두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소동이 일어났고, 파장을 일으켰다.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헤롯의 자존심은 상했고, 교활한 왕으로서의 위세는 떨쳤는지 모르지만 성왕으로서의 통치에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감추고 있었던 열등감은 드러나고 말았다.

‘대왕’이라는 수식어를 붙여가며 자기 스스로 전무후무한 위대한 왕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다. 그에게 그리스도가 나실 것이라는 말자체가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둘째 비밀은 그리스도를 경배할 수 있었던 이들’에 관한 것이다.

헤롯은 부역자들이 전하는 정보에 따라 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냈다. ‘베들레헴일까, 나사렛일까?’ 약간의 논란의 여지가 있었지만, 결론은 ‘베들레헴’으로 결정 났다.

헤롯은 만약 찾게 되거든, 자기에게도 알려줘서 경배하게 하라고 했다. 그에게는 그리스도이심을 알아볼 눈이 없다. 성경이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있진 않지만, 합리적인 추론은 정보원이다. 헤롯이 정보원을 붙여 동방의 박사들을 일거수일투족을 은밀히 감찰했을텐데, 그들에게 어떻게 아기예수께 경배하는 박사들의 모습은 포착되지 않고 가려질 수 있었을까?

 

오늘의 말씀을 보면, 바로 이 모든 비밀들의 열쇠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비밀이 해제된 뒤에, 천사들의 찬양이 울려퍼졌다.

 

‘구유에 누우신 예수’

당시의 상황이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 변화와 그에 따른 혼란을 엿볼 수 있다. 가이사가 제국에 속한 나라들에게 명령을 내려 호적을 하게 했다. 수리아를 관할하는 총독은 구레뇨였는데, 빠른 성과를 중시하려다 보니까, 일시에 호적을 하게 했다. 사람들이 고향으로 호적하러 가고 요셉과 마리아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곳이 마찬가지였겠지만 베들레헴도 사람으로 붐볐다. 결국 그 와중에 아기 예수께서 탄생하게 되신 것이다. 그리고 여관에 있을 곳이 없었고, 구유에 누여놓을 수밖에 없었다.

 

동방박사들을 인도한 곳은 뜻밖에도 이곳이었다. 별들은 발걸음을 재촉하라는 듯, 더 강하게 빛을 내는 것 같더니, 그들이 서있는 곳에서는 천사들이 수놓는 것처럼 장관을 이루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 갓 태어난 예수께서 편안히 잠들어 있었다.

감시병들에게는 그 장면이 보일 리 없었다. 구유에 아기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할 수 없을뿐더러, 그렇다하더라도 그가 메시야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예루살렘의 소동과 대치되는 장면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너무나 고요하고 평화롭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구주 탄생의 자물쇠가 열리고 비밀이 해제된 사건을 경험하는 밤이었다.

 

 

 

그리고 목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한 밤을 맞은 목자들,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지키는 사람들과는 달리, 어두운 때에 보호하고 돌보기 위해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도 이 비밀이 해제되고, 광명한 밤하늘에 별들이 빛날 때, 천사들이 나타났다. 이 동네에 구주가 탄생하셨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홀연히 수많은 천군천사들이 셀 수 없이 빛나는 별빛들과 함께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 울려 퍼졌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메시야, 이아침 이 비밀이 여러분에게도 해제되고 그 기쁨이 충만하길 바란다. 천사들의 노래가 들리는 마음이 열리기를 축원한다.

 

그 비밀은 굉장히 역설적이다. 구원을 위해 오신 분, 그런데 오히려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이신 아기, 돌봄을 필요로 하다. 그리스도 탄생의 비밀은 영웅적인 사건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열광적이고 광신적인 연출을 통해서도 아니다.

 

그 비밀은 고요한 신비이다. 두려운 사건을 용기있게 받아들일 줄 알고, 보배로운 예물로 경배하기 위해 겸손히 몸을 낮추고, 목자라는 직업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돌봄과 보살핌이라는 특유의 ‘지킴’(그 지키는 마음)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신비이다. 그 고요함 속에 큰 기쁨이 넘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그것 없이는, 감시병들이, 그리고 끝내 헤롯이 찾지 못했던 메시야처럼 소란과 동요만 있는 해프닝에 불과하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사1:3)

 

 

저는 광야와 같은 인생의 노상에서 평범하지만 매우 소중한 것들일 지키느라 수고하는 모든 분들에게 성탄의 기쁨이 함께 하시기를 빈다. 가정의 행복을 필사적으로 지키기 위해 마음고생의 눈물 흘렸던 이에게 주님이 함께하신다. 깜깜해진 불경기 속에서도 가족들의 필요를 채우느라 용기를 냈던 분들에게도 주님이 함께 하시기를 빈다. 자녀의 수장된 이유를 모르고, 그 슬픔에 고통받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자녀 때문에 눈물 흘렸던 모든 시간들 가운데 성탄의 기쁨이 함께 하시기를 빈다. 물론 세월호 유가족들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주님의 위로와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빈다.

 

어린이집 버스차량에서 방치됐다가, 아직도 의식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그 아이의 운명을 눈물로 돌보느라 ‘지쳤다’는 말조차 아이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워 하는 그 부모에게도 주님이 함께 하시기를 빈다. 더불어 건강에 이상이 생겨서 용기를 내고 담대한 마음으로 이겨내야 했던 환자분들과 그 가족에게도 성탄의 기쁜 소식이 함께 하시길 빈다.

 

오늘은 성탄주일이자 송년주일이기도 한데, 저에게는 또 하나의 음성이 들려온다.

 

“잘하였도다.”

 

여러분을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25:21,23)

 

한 해 동안 주님께서 맡겨주신 각자 나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지시느라 수고 많았다. 자존심을 버렸던 일도 참 잘하였다. 자기생각, 유익, 자기세계, 자기만의 것이 있지만,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말씀으로 순종하기 위해 뼈를 깎는 것 같은 고통을 감내하신 것도 참 잘하였다.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여 사랑하고 섬겼던 일들도 참 잘하였다. 어떤 분은 세상 사람이라면 쉽게 참을 수 없는 일을 당하면서도 인내하고 참고 견디면서 하나님께 영광돌린 분들도 있다. 참 잘하였다. 타인이 속상해하거나 화가 났을 때,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그 마음 풀어주느라 신경쓰신 분들도 잘하였다.

인생에 위기와 환난이 따르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하고, 믿음으로 참고 견딘 분들도 정말 잘하였다.

물질적인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 잘 안다. 그런데 그 중에도 자기가 쓰기보다 하나님의 것을 먼저 구별하여 드렸고, 알뜰살뜰 살았던 것 잘하였다.

교인들의 식사를 위해서 주님의 식탁의 자리와 같은 애찬을 위해 준비한 여선교회 회원들의 수고 역시 잘하였다.

 

 

 

예수 그리스도 탄생의 기쁨이 충만하기를 기원한다.

Leave a Comment

빠른 문의

이메일로 문의를 남겨주시면 빠른 시간 내에 연락드리겠습니다.

Not readable? Change text. captcha t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