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18일 주일예배설교

 

기원 :

끊임없는 계절의 변화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으로 피조물을 인도하시는 사랑의 하나님, 거룩하게 구별된 주님의 날에 저희를 부르셔서, 예배의 자리에 참여하게 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어깨를 움츠리게 하는 계절에, 마음을 잠근 자물쇠를 풀고 마음껏 주님을 호흡하기 원하여 주님 전에 나왔사오니, 주님이 주시는 새롭게 하심의 물결을 힘입어 영원한 생명의 채취로 물씬 적셔지게 하여 주시고, 성령으로 저희와 함께 하셔서, 저희 예배가 주님께 합당한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거룩의 말씀 :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8).

 

 

1. 절망과 희망의 신비

#1. 한 어부가 아내와 두 명의 아들과 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이어 두 아들 모두 어부가 되길 바랐다. 어느 날 화창한 날씨에 두 아들을 데리고 바다에 나갔다. 아내가 정성껏 싸준 도시락까지 챙겨 기분 좋은 항해를 시작했는데 오후가 되자 맑았던 날씨가 음산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내 바람이 불고 폭풍과 함께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삼부자가 탄 조그만 배는 쉴 새 없이 곤두박질쳤다. 밤이 되도록 맹렬한 파도에 도무지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조금 남았던 희망마저 절망으로 바뀌는 순간 둘째 아들이 소리쳤다.

아버지, 저쪽에 불기둥이 보여요. 우리는 살았어요.”

다시금 희망을 부여잡고 필사의 힘을 다해 불길 쪽으로 노를 저었다. 가까스로 포구에 도착한 삼부자는 기뻐 어쩔 줄 몰랐다. 포구에는 어부를 마중 나온 아내의 모습까지 보였다.

그런데 무사히 돌아온 삼부자의 모습에 환성을 지르고 달려올 줄 알았던 어부의 아내는 고통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어부가 물었다.

 

여보, 우리가 이렇게 살아 돌아왔는데 당신은 기쁘지도 않소?”

 

그런데 아내는 슬퍼하며 울먹였다.

#2. 그 이유를 설명하기전에 잠깐! 박복동 성도님이 마지막 항암주사를 못 맞고 20일부터 바로 10차례 방사선치료에 들어간다. 다른 혈액상태는 괜찮은데, 면역수치가 충분히 오르지 못해서 두 차례나 연기돼서 걱정했다. 그런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3. 자, 먼저 아내가 울먹였던 이유부터 설명하겠다.

 

여보, 우리가 이렇게 살아 돌아왔는데 당신은 기쁘지도 않소?”

 

이 말에 아내는 울먹이며 대답했다.

 

여보, 미안해요. 오늘 저녁에 우리 집 부엌에서 불이 났는데, 다 타버렸어요. 저만 가까스로 살아남았어요.”

 

그러니까 좀 전에 봤던 그 불기둥은 그의 집이 타는 불기둥이었다. 참 아이러니한 것은 그 덕에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

 

#4. 박복동 성도의 특별한 사연은 이렇다. 방사선 치료를 위해 어느 부위에 집중적으로 해야할 지 검사를 해보니, 암이 발생했던 위에 종양은 보이지 않는다. 뼈까지 전이됐던 암세포도 흔적만 남아있다.그러니 더 이상 항암치료가 의미 없는 것이다. 신앙적으로 믿음 안에서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의미 없는 항암치료제 투여를 막으신 것이 아닐까?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치료의 길로 인도하신 것이다. 꼭 12번 다 안 맞아도 11번에 족했고. 이제 방사선 치료를 잘 받고, 완치판정이 나기를 기도할 소망을 주신 것이다.

 

 

2. 능력과 실패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자 하는 말씀의 은혜는, 우리 인생에 개입하시고 역사하시는 주님의 신비한 섭리이다. 나의 생각과 기대와 달라서 낙심이 찾아올 때,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는 구원의 길을 놓고 계시다.

이러한 간증은 너무나도 많은데, 성경은 한 결 같이 이렇게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이 믿음을 갖기를 주님께서 바라신다.

 

#1. 16장은 바울 사역의 분수령이 되는 장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16장 이전까지는 예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이 나타나고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가 있었다. 복음을 듣고 권세자들까지 돌아오는 역사도 나타났다. 특별한 어려움이 없었다. 뜻한 대로 이루어주시고 기도하는대로 응답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16장에서부터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어려움이 생기고 고난이 따른다. 선교의 불모지에 떨어지기도 하고 연고가 없어 선교의 난항을 겪기도 한다. 뜻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기도에 대한 응답이 더딤이 나타나기도 한다.

 

자 살펴보자. 바울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려고 했는데, 이상하게도 길이 막혔다.

15장 41절을 보라. 수리아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16장 1절과 5절을 보라.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1),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5).’

자연스럽게 다음 장소는 어디일까? ‘아시아 주(州)’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전도하고 선교했던 지역과 가깝고 쉽게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동안 승승장구했던 것과는 달리, 뜻대로 되지 않았다. 길이 막히고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왜일까?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할까?

 

사도행전이 기록한 바울의 사역에서 처음 맞는 시련이 찾아왔다. 여기서 멈춰야 하는가? 주저앉거나 돌아가야 할까? 바울은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좋을까?

 

#2. 여기서 잠깐 인간적인 생각을 해보자. 2차 전도 여행 초반에 바나바와 적잖은 갈등이 생겼고 결국 서로 갈라서기로 했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분명히 이런 처지와 형편에 대한 소식을 바나바도 이런 저런 경로로 들을 텐데, 체면이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수리아나 더베, 루스드라에서는 보란 듯이 잘해왔다. 그런데 여기서 막혔다. 물론 바나바가 ‘거보라!’고 그렇게 생각할 리야 없겠지만, 바울의 입장에서는 뭔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절대로 없었을까? 그도 사람이기에 말이다.

물론 우리는 주님의 일을 할 때, 어려움을 겪으면서 더 큰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자신을 내려놓고 순종하면서 믿음이 성숙해간다. 그리고 역지사지도 배운다. 이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나중에 바나바를 이해하고 화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어쨌거나 그동안은 잘 되는 일들만 경험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막혔다. 하나님의 뜻조차, 그동안의 있었던 일들조차 의심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지만 돌파능력이 있다. 우회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면돌파를 택하는 사람도 있다. 7절을 보라.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애썼다고 하는 말은 돌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강구하고 해볼 수 있는 방법을 다 해봤다는 말이다. 바울은 비두니아 쪽을 통해서 아시아로 들어가 볼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에는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기 때문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주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인간적인 돌파력도 소용이 없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촘촘히 선교지를 믿음으로 밟겠다는 자기 계획을 내려놓고 무시아를 지나쳐서 드로아까지 직행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길을 막으시고 허락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돕지 않으시기 때문일까? 실패를 주시기 위함일까? 좋은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때도 계시기 때문일까? 혹은 겸손하게 하시기 위해서 일까? 하나님의 뜻과 나의 생각이 다름을 통해서 겸손을 배우는 것은 맞다. 그러나 실패와 좌절을 일부러 주시기 위해 시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겸손을 배우고 더 큰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배운다.

그런데 우리는 다음 대목에서 바로 하나님의 신비한 섭리를 깨달아야 한다.

 

#4. 바울이 밤에 환상을 꾸는데,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나타나서 간곡하게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그 소리가 너무나 분명해서, 환상에서 깨어보니, 그대로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11절, 드로아에서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다음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렀다. 빌립보는 마게도냐의 첫 성읍이다. 마게도냐로 속히 간 것이다.

 

이것을 보면, 길이 막히고 뭔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성급하게 굴게 아니라, 조금 인내하고 참으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이 분명해질 때까지 침착할 필요가 있다. 더 중요한 뜻이 있어 기다렸다가 부르시는 하나님의 사명이 있지 않은가!

 

 

3. 주님의 신비스러운 섭리

#1. 그는 누구였을까?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애타게 간청하며 환상 중에 나타났던 사람 말이다.

 

바울이 마게도냐의 첫 성, 빌립보에 이르렀다. 연고도 없고, 회당도 없고, 기도할 곳도 없었다. 기도하며 예배하려고 강변쪽으로 나갔는데, 거기서 우연처럼 여인들 속에서 루디아라는 여자를 만났다. 그는 들을 귀가 열려 있었고 복음을 듣자 예수를 영접했다. 그리고 가족 모두가 세례를 받았다. 들을 귀를 열어주신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특별한 일인가?!

또 악덕한 포주와 같은 자들에게 이용을 당하는 귀신들린 여자가 있었다. 사람들에게 점을 쳐주어 막대한 이익을 주인에게 안겨주었다.

그런데 매일 같이 바울을 따라와 괴롭혔다. 처음에는 미친 사람이라 여기고 외면했다. 그러나 너무 심하게 괴롭혀서,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아 나오라고 소리쳤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가 온전해졌다. 역사가 일어났다. 그가 영매의 역할을 할 때마다 얼마나 그 영혼이 피폐해지고 괴로웠는지 모른다. 겉사람은 미쳐 보이지만 속사람은 자유롭게 벗어나고 싶어서 절규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가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알아보고, 바울에게 그토록 달라붙었던 것이다. 더 이상 귀신이 예수의 이름으로 온전해진 그에게 달라붙지 못했고 영매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됐다. 자연히 그 여자를 유린하여 막대한 수익을 얻었던, 주인의 수입이 끊어졌다. 그러자 분개하여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관청에게 끌고 갔다. 분명히 관리들과 유착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죄도 묻지 않고 따지지도 않고 매질부터 했고, 깊은 감옥에 가뒀으니 말이다.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신분도 확인하지 않았다.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다. 간수가 황급히 뛰어와 보니 여기저기 부숴지고 옥문까지도 큰 틈이 벌어졌거나 열려있었다. 죄인들이 다 도망간 줄 알고 그 후속파가 두려워 자결하고자 할 때, 바울이 급히 멈추게 한다. 밤새 바울과 실라의 기도소리와 찬송을 듣던 죄수들도 감화되어, 도망가지 않았고, 간수도 거기서 예수를 영접하고 가족 모두가 구원을 받게 된다.

 

#2. 이전에는 능력과 권세만 경험했지만, 이제는 고난과 시련을 겪는다. 그런데 고난과 시련을 통해 능력과 권세만 경험할 때는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닫는다. 하나님의 신비한 섭리이다. 첫째는 안 될 것 같아 보이지만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고(고전1:18_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둘째는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다는 것(고전1:20), 셋째는 전도의 미련함으로 복음이 증거되고 구원이 일어난다는 것(고전1:21). 참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3. 우리를 도우라는 그는 누구였을까? 로마서 8장 26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라.” 또 이어서 27절에,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성령께서 그 지역의 탄식하는 영의 소리를 들으시고 친히 바울에게 나타나 마게도냐로 부르신 것이 아닌가. 그곳에 복음이 절실함을 알고, 바울을 부르시기 위해, 아시아의 사역을 막으신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곧장 드로아까지 불러 인도하셔서 거기서 환상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리고 시련 뒤에, 고난 뒤에, 안되는 것 같아 보이는 일 뒤에 분명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가 있다.

 

마게도냐 첫 성읍이었던 빌립보에 들어가기까지도 아무런 방법과 준비가 없는 듯 보였지만, 하나님의 신비한 섭리는 복음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준비시켜 놓으시고 그 예비하심을 통해서 능력이 나타나게 하셨다.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절망과 실패의 지표가 승리와 생명의 푯대가 되고 있는 지 누가 상상할 수 있으랴? 분명한 건 절망 뒤에는, 아니 그 속에 이미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절대 포기하지 말고 힘과 용기를 내라. 다시 일어서면 그만이다.

오늘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여길 때,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섭리가 무엇인지 헤아려보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섭리를 믿으며 감사함으로 구할 것을 아뢰라.

 

말씀을 정리하자.

1) 성령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하시는 일이다. 여러분을 위해 친히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시고 돕기도 하신다. 사명을 맡기시기도 하시고 예비하시고 인도하신다.

 

2) 능력과 권세는 확신을 더하지만 고난과 시련은 더 크신 하나님의 신비로운 섭리를 깨닫게 하고 믿음이 깊어지게 한다.

 

3) 오늘 우리가 고난과 어려움이라는 인생의 무거운 짐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왔다. 주님은 그것을 복된 것으로 바꾸어주시겠다고 은총을 선물로 주신다.

 

우리의 좌절과 소망 사이에 주님께서 계심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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