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야고보서5:14-15)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야고보서5:14-15)
1.
교회 OOO 성도는 병원에서 퇴원했다.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표적치료제를 꼽고 퇴원한 뒤에, 이틀 후 다시 내원해야 했다.
뼈까지 전이된 터라 등 뒤가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병상에서 일어날 수도 없는데, 걱정이었다.
환자는 더 있고 싶어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침상에서 일어나는 것, 화장실 가는 것, 씻는 것….
갑자기 모든 것이 어려워졌다.
이런 격절로부터 불안과 두려움은 어두운 낯빛으로 찾아왔다.
걱정은 많았다.
권사님이 앞으로 수발들 일도 걱정이고, 두 분 모두다 직장을 그만 두어야 하는 것도 걱정이고, 따라서 생계도 걱정이다.
전동침대를 대여할 수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이다.
3층 비좁은 층계를 그 큰 물건이 들어올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
병원에서 식이법에 대해서 꼼꼼히 설명해줬다.
당연히 입맛이 떨어지고 아니, 음식을 넘기지 못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더 이야기할 예정이다.)
2.
이곳에 부임한지 벌써 5년 째다. 벌써 암 환자를 다섯 번이나 대했다.
그 자세한 설명은 조심스럽다.
첫번째 암환자는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임종직전에 있었다.
30대 후반의 기혼여성이있는데, 가족은 마지막까지도 희망을 놓지 않고 있었다.
의사는 마지막 순간을 목회자에게 맡겼다.
특별 격리실에서 가족은 유리 너머로 지켜보는 가운데,
1시간 가량을 기도와 찬송을 혼자 불러줬다.
전화가 왔다. 상태가 호전된듯 하니, 다음날 또다시 와주십사 하는 부탁이었다.
다음날도 마찬가지로 오전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각각 한시간 씩
격리실 안쪽에서 혼자 조용히 찬송과 기도를 해드렸다.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는데, 저녁이 됐다.
기도를 마치고 근처에서 저녁식사 중이었는데, 급히 전화가 왔다.
권사님이 같은 방식으로 찬송과 기도를 하고 있는데 딸이 한 방울 눈물이 주르르 흐르더라는 것이다.
(그도 끝까지 견뎌보려고 노력을 다했으나 더이상 버틸 힘이 없었던 것인가?!)
그 눈물의 의미를 아셨는지, 나를 급히 부른 것이다.
유족들에게 그 눈물은 작별인사와 같았다. 슬픔중에도, 별빛처럼 빛났던 눈물 한 방울은 위로가 됐다.
마지막을 목회자의 기도와 찬송 가운데 보냈다는 것도 최선이었다고 받아들였다.
그 임종의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도록 하는 일에 목회자는 부름을 받았다.
하나님의 현존하심을 나타내주도록 말이다.
3.
두번째 암환자는 지금 건강하게 생존하고 있다.
청소년 시절을 암투병 하면서 보냈다.
그 보다 더 상태가 좋았던 친구들도 병실에서 죽어나가는 것을 보면서 가족 모두에게 두려움이 엄습했다.
부모의 심정은 뭐라 말할 수 없다.
“OO야, 토하더라도 먹어. 그럼 살 수 있어.”
말해줬다. 그리고 이게 기도제목이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항암투여중에도 잘 먹었다.
닭볶음을 먹고 싶다고 해서 병원으로 배달을 시켰을 정도로 말이다.
폐에 전이가 된 것인지, 염증이 생긴 것인지, 이상한 소견을 보였는데, 그것도 하나님께서 고쳐주셨다.
(혹 이 글이 책으로 만들어지면 자세히 다룰 것이다. 하나님의 신비체험이었다.)
올해 병원에서 더이상 치료를 안해도 될 것 같다고, 완치로 인한 치료종결 선언이 내려졌다. 할렐루야.
4.
세 번째는 재발이 문제였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