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우돌봄에관한기록‬ 2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이사야43:1)

암으로 인해 생존가능성 희박한 분에게 생명의 희망을 주어야 하는지, 삶을 잘 마무리 짓도록 도와야 하는지 고민됐다.

그러나 그럴 새도 없이, 지금 당장 고통스럽고 무너진 마음은 고통을 가중시켰다.

난 선천적으로 희망을 말한다. 사느냐, 죽느냐는 희망의 열쇠일 수 없다. 의미와 영원에 잇댄 채 지금 순간에서 하나님의 현존하심을 체험하고 경험하는가의 문제가 희망의 단서이다.

순간적이고 유한한 시간을 영원으로 만들 수 있는가? 희망이다.
시간의 무한정한 연장과 길이에도 불구하고 의미를 상실하는가? 절망이다.

교회의 암환자분이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가족들과 형제들도 도왔다.

겸손히 이 문제를 하나님께 물어보자.

희망을 불어 넣어주는 것도, 삶을 마무리 짓도록 도와주는 것도,
그 판단의 근간은 내가 아니다. 사람이 아니다. 그 자체가 교만이다.

며칠 후 병실에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자 이로써, 유한한 존재의 시간은 어떤 영원에 잇대어
새 소망을 발견할까?

위의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 임하시도록 기도하며 다음날을 기다렸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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