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6년 4월 3일 / 부활절 2주, 선교주일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며, 세상 모든 나라를 공의로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 복된 주님의 날에 저희를 부르셔서, 예배의 자리에 참여하게 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따스한 햇살 가운데 불어오는 바람이 형형색색의 꽃을 피우고, 초록으로 덮인 대지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계절에, 성령의 바람으로 치유함을 얻기를 바라며 주님 전에 나왔사오니, 머리 숙인 저희에게 평강과 소망으로 채워 주시고, 성령으로 저희와 함께 하셔서, 저희 예배가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대속자가 되시고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5:8)
- 안 풀리는 인생 같아보여도
오늘 부활절 2주이다. 하나님은 부활의 섭리와 능력을 자연으로도 보여주신다. 산수유, 개나리가 반가웠는데, 벚꽃이 만발했다. 이 좋으신 은혜와 사랑이 우리 모두에게 가득 넘치기를 주님이 바라신다.
오늘은 경기장으로 뛰어든 어느 아버지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한다. 그 모습이 우리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목도 ‘경기장으로 뛰어든 아버지’라고 잡았다. 자 잠시 후를 기대하시라.
믿음의 선조들을 보면 삶이 참 안 풀리는 것만 같았던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어떤가? 그런데 위로가 되는 것은 성경의 인물들이 어느새 하나님의 복을 받고, 약속이 성취됐다.
아브라함을 보자. 75세에 고향 같은 하란을 떠나야 했다. 75세라는 나이가 말해주는 것은 그때까지 그의 삶은 변변치 않았다는 것이다. 이삭은 사람만 좋았지, 실속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랄 지역에서 우물을 파놓으면 뺏기고 또 뺏겼다. 그때마다 별다른 대항도 못하고 당하기만 했다. 물론 거부(巨富)가 되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 그의 모든 인생이 풀렸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늘 성경에 등장하는 야곱도 마찬가지다.
형 에서를 대신해서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채려고 어머니와 잔꾀를 부렸다가 무작정 도망을 나섰다. 그곳이 외삼촌집이었다. 여기서 레아와 라헬과 차례로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살았지만, 이상하게 내집 같지 않았고 삼촌 라반한테 번번이 속았다. 얍복 강가에서 형 에서와 극적인 화해를 이루고 이제 살 만한가 했는데, 세겜에서 딸 디나가 욕을 당하는 사건을 때문에, 안정적인 삶의 기회가 여건이 송두리째 날아갈 위기에 처했다. 사랑하는 요셉이 죽은 줄만 알고 오랜 시간을 자식을 가슴에 묻어둔 채 사는 괴로움을 겪었다.
-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없나니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때그때마다 피할 길이 생기거나 살길이 열린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살만한 힘이 생긴다.
세 가지 측면이 있다.
1) 첫째,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인 음성을 듣고 위로를 얻는다. 심중에 깨닫는 어떤 은혜,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야곱도, 삼촌 집으로 피신하는 노중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디나 일로 세겜에서 급히 피신해서 나올 때에도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셨다.
2) 두 번째 측면은 사람과 일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도우신다. 라헬을 만나서, 그 사랑 때문에 7년을 수일처럼 여겼다. 설레게 하는 사람 때문에 다른 것은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삼촌으로부터 아무 대가도 받지 않고 일했다. 하지만 서로의 소유를 나누기로 정하고 난 뒤에, 하나님은 단기간에 그의 소유를 채우셨고, 그것을 통해서 야곱의 편을 들어주셨다. 우리는 여기서 갚으시고 채우시는 하나님에 대한 기대를 갖는다.
레아는 자녀를 줄줄이 출산하는데, 라헬에게는 자녀가 없자, 부부간에 금이 가고 갈등이 생긴다. 이런 점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참 어렵고 힘들게 만든다. 라헬이 레아를 시기하고 “자녀를 못났느니 죽을 거라고” 야곱을 괴롭게 하자, 야곱도 “하나님이 임신을 허락하지 않는 것을 어떡케 하느냐?”고 화를 낸다. 불가항력적인 일로 인해 일어나는 갈등은 결말이 없다. 포기하고 단념하고 그쳐야 하는데, 그래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더, 서로를 힘들게 한다. 불화의 문제는 불행의 골을 깊게 만든다. 같이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 수도 있고, 서로 야속하게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배후에서 도우셨다. 르우벤이 우연히 들에서 합환채를 구했다. 임신특효약이라고 알려졌던 명약이다. 이것 때문에 언니랑 소원했던 관계도 다시 회복되고, 라헬이 임신했다. 하나님께서 답이 없는 인생의 뒤편에서 해결책을 주신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에서를 다시 만나 지난날의 잘못을 풀려고 했을 때에는 어땠는가? 큰 손실과 피해를 감수해야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일이 어떻게 될지 몰라 두려워하는 그의 근심은 깊어 갔다. 하지만 의외로 문제는 쉽게 풀렸다. 거기서 용서받았고 화해했다. 여러 변명의 말과 해명의 말이 필요 없었고, 문제는 쉽게 일단락 지어졌다. ‘형의 얼굴을 뵈오니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 같습니다.’ 감동한 야곱의 고백이다. 이것은, 풀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인간의 근심과 걱정에 살길과 피할 길을 내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역설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태산 같은 걱정을 하고 있는데, 생각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쉽게 풀어주신다.
3) 그런가하면 세 번째 측면은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것이다. 안돼 보이는 일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피할 길과 살 길을 여신다. 이것의 키포인트는 하나님에 대한 간절한 믿음을 필요로 한다.
자 보자. 요셉은 야곱이 정말 애지중지하던 자식이었다. 그런데 자식이 실종됐고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그 슬픔이 시간이 지난다고 사라질 수 있는 것일까? 아니라는 게 부모의 마음 아니던가! 그런데 큰 흉년 때문에 양식을 구하러 애굽으로 자식들을 보내놓고 또 사건이 벌어졌다. 시므온을 잃게 될 위기에 처했다. 일은 더 커져갔다. 설상가상으로 베냐민을 형제들과 함께 보내서 시므온을 구해 와야 하는데, 일이 어찌 될지 모른다. 참 난감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래도 야곱에게 찾아온 마음은 간절한 믿음이다. 아들들이 말하는 애굽의 총리라는 사람이 오해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선물을 보내어 마음을 좋게 해주고 오해를 풀어주면 잘 풀릴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의 근간에는 창세기43:14을 보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므로 선한 길을 여실 것이라.”는 간절한 믿음이었다. 이렇게 하나님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게 하시고 소망을 주신다. 아슬아슬한 희망 속에 믿음을 더하신다.
결과는 어땠는가? 잘 알고 있다. 먼저 애굽의 총리로만 알았던 그 사람이 바로 요셉이었다. 그의 고백은 무엇인가?
“형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45:5,7)
이 고백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런 것을 악용해서 타인에 대한 잘못된 행위를 정당화하고, 궤변의 구실로 삼을 수는 없겠지만, 하나님의, 지혜롭고 선하신 인도하심이… 있다.
야곱 인생사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와 다를까? 어려움과 고난을 만난다. 굽이길을 만나기도 하고 막다른 길을 만나기도 한다. 오르막길이 있는가 하면 내리막길이 있다. 그때마다 피할 길이 생기고 살 길이 열린다. 누구 때문인가? 하나님께서 하신다.
그래서 여러분, 고린도전서에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0)
오늘 말씀을 보라. 야곱은 애굽에서 일어난 요셉의 모든 일을 들었다(26). ‘요셉이 살아있다.’ 어리둥절했다. 요셉이 보낸 수레를 보고 야곱은 어땠는가? 45:27절에 ‘기운이 소생한지라.’
저는 이 대목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가 낙심하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릴 때,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도 못하고 예상치도 못할 살 소망을 감춰두고, 아직 공개하지 않으실 뿐이다.
- 아름다운 인생의 완주를 위해
한 가지 더 생각해보자. 하나님은 피할 길을 내시고 살 길을 여시는데, 그치는 것일까?
그에게 살 소망을 주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46:2-3절,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이 약속이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믿고, 오늘 우리 삶 속에서 소망과 비전을 품으라. 하나님은 살길, 피할 길을 주실뿐만 아니라, 거기에 그치거나 멈추는 것이 아니고, 인생의 완주를 가장 선하고 아름답게 이루시는 분이시다. 끝내 이루시고 복되게 하시는 분이시다.
요셉을 다시 만난 야곱은 한동안 목을 어긋맞춰 안고 울다가, “네가 지금까지 살아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창46:29-320) 이 반전의 감격과 감동의 마음이 읽혀지는가?
간절한 믿음은 우리 인생의 완주를 가장 아름답고 선하게 이루게 해준다.
히브리서11:1-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또한 시편은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영상 : 여기를 클릭하시면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
데렉 레드먼드가 고통 속에서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근육이 끊어져 고통 속에 괴로워하는 아들의 얼굴이 아버지를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게 만들었다.](영상 내용중)
하나님은 어떠실 것 같은가?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우리가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오셔서 반드시 도와주실 것이다.](영상 내용중)
[고통스러워도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영상 내용중)
하나님이 살아계시다. 그분은 우리 삶에 개입하시고 섭리하시며 분명히 도와주신다.
하나님은 친히 때마다 일마다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시고 형통하길 바라신다. 한 길이 막혔다고 낙심하고 있을 때, 열 길이 열린다. 하나님께서 열어주신다. 이 믿음으로 승리하는 한 주간이 되기를 바라신다.
끝까지 이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