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15. 성령강림절 후 25주, 추수감사주일)

 

이른 비와 늦은 비로 오곡이 자라게 하시고, 따뜻한 햇볕과 은은한 바람으로 백과를 무르익게 하신 사랑의 하나님, 뜻 깊은 추수감사절에 저희를 부르셔서, 예배의 자리에 참여하게 해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내리시는 이슬과 비, 그리고 햇빛을 먹으면서 자란 열매들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감사의 절기에, 한 해 동안 지켜 주신 주님의 사랑을 감사하며 주님 전에 나왔사오니, 저희들이 드리는 감사의 찬송과 예물을 기쁘게 받아 주시고, 성령으로 저희와 함께 하셔서, 저희 예배가 주님께 합당한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 일상의 평범한 것들에 대한 감사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한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자. 절망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감사하다. 어렵고 힘들 때, 위로와 이길 힘을 주신 것도 감사하다. 여러 가지 염려와 근심 속에서도, 돌아보면 주님께서 살 소망이 있는 길로 인도해주셨다. 그것도 감사하다. 평범한 것에 감사가 많은데, 그것들에 익숙해져서 감사를 모른다. 그런데 나와 함께 있는 것이 가장 소중하고 감사한 것이다.

 

한창 나이에 실직한 남편이 있었다. 아내와 의논하여 시장에 조그만 야채가게를 내고 장사를 하는데 그런대로 장사가 되었다. 하지만 남편의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직장에서 밀려난 것에 대한 상처가 남아 있었다. ‘나는 실직자다! 나는 밀려난 실패자다!’ 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가 가게에 찾아와 아빠에게 예쁜 봉투를 하나 건넸다.

“이게 뭐니?”

“아빠 나중에 보세요.”

궁금해진 아빠는 딸이 나간 후 그는 쪽지를 꺼내어 천천히 읽었다.

“아빠! 생신 축하드려요. 좋은 선물은 못해 드리지만 언제든지 쿠폰을 사용하시면 정성을 다해 드릴께요. 힘내세요. 정말 사랑해요. 아빠의 사랑하는 딸 올림”

그리고는 그 밑에 네모난 칸이 여러 개 그려져 있었고 이렇게 쓰여 있었다.

“10분짜리 안마쿠폰” “구두 닦는 쿠폰” “심부름하는 쿠폰” “노래해드리는 쿠폰” “뽀뽀해드리는 쿠폰”

그리고 밑에 한 줄 더 붙여 놓았다.

“이 쿠폰들은 딱 한 번만 사용하실 수 있어요. 하지만 기분 좋으면 두 번도 해드릴게요.”

그 아버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여보. 난 직장에서 쫓겨나는 순간 세상의 모든 걸 다 잃어버린 줄만 알았는데 이제 보니 아주 부자였구려.” 부부는 손을 꼭 잡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우리가 정말 소중한 것을 잊고 있어서 그렇지, 사랑하는 사람을 주신 것도 감사하다. 감사로 그치지 않고, 주님을 증거하고 복음을 증거할 수 있기를 빈다.

 

  • 소아시아교회 중 빌라델비아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는 주님의 말씀이다. 그 중 빌라델피아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함께 주님의 칭찬만을 들은 교회이다. 에베소 교회나 버가모 교회는 칭찬을 듣는 동시에 책망도 들었다. 그리고 라오디게아 교회는 칭찬은 없고 책망만 들었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에, 왜 빌라델비아 교회일까? 여기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분명하다. 그리고 우리교회에 대해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대와 뜻이기도 하다.

 

지난 주간에 목회자를 위한 웨슬리 전도학교에 참석하고 왔다. 하루 일정이 끝나고 다른 분들은 오랜만에 만난 분들과 늦게까지 담소를 나누었다. 하지만 저는 좀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 야식으로 치킨이라도 먹고 오자고 했다.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여러분의 기도제목을 위해 기도하는 일도 잊을 수 없었고, 또 내년도 목회에 대한 비전을 놓고 기도하는 일도 시급했다. 달력이 이번 주까지는 주문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자면 표어와 주제 말씀도 정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주시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당장 어떤 결론을 내리고 기도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선한 것을 허락하시고 도우시기를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이런 음성을 들려주신다. 앞으로 우리 교회에서 십일조를 매달 천만원 이상을 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는데, 주님께서 주신 마음이니, 전할 수밖에 없다. 또 매달 100만원이상, 할 사람들도 생길 것이라는 거다. 이것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은 드는데, 복수 형태다. 거짓말 같은가?

 

여러분 아브라함이나 사라가 길 가는 나그네들로 역사했던 주님의 말씀에 웃었던 이유가 뭔줄 아는가? 내년 이맘 때,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말에 웃었다. 길 가는 나그네들의 말을 듣고 어떻게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을까?

저 역시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믿음의 눈을 뜨지 못하면,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듣지 못하는 것이다.

 

‘주님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ㅎㅎ’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경수가 끊어졌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그냥 지나가는 나그네들의 헛소리일지 모르지만,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 믿음을 가지고 나에 대한 말씀으로 들을 수 있기를 빈다. 주님이 원하신다.

 

여러분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아브라함에게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18:14) 하나님께서 하시면,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으시다.

 

그래서 제가 하나님께 또 물었다. 그러면 불공평한 것 아닌지 말이다. 누구는 그렇게 될 수 있고, 누구를 그렇게 되지 못하면, 그렇게 되지 못한 사람은 얼마나 속상하겠는지 말이다.

 

  1. 우리에게 허락된 면류관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어떤 장면을 보여주신다. 우리 교우들 머리에 면류관을 씌워주시는 장면이었다. 그 모양과 생김이 다르다. 여러분은 행복해하고 하나님을 더욱 찬양하며 감사의 찬송을 부르고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이것이 무슨 징조일까?

“아하, 은혜와 상급이 다르구나!” 하나님의 사랑의 질과 양은 동일하지만, 그 주시는 모양이 저마다 다른 것이다. 공평하신 하나님이시다.

 

거짓말 같은가?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말씀하신다.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내가 네 앞에 열린 물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심지어 9절 말씀을 보면, 새번역 성경으로 읽겠다.

“보아라. 내가 사탄의 무리에 속한 자들을 네 손에 맡기겠다. 그들은 스스로 유대 사람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다. 보아라, 내가 그들이 와서, 네 앞에 꿇어 엎드리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는 것을 알게 하겠다.”

무슨 말인가? 신앙의 대적자가 돌아와서, 결국 증거되는 것은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는 것을 알게 하겠다.” 그 믿음과 소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거하겠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으며, 주님을 의지하라. 그 안에서 소망을 품으라. 도우시는 주님께서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거하실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 어떤 면류관들이 있는지 살펴봤다. 하나님은 불공평한 분이 아니시다. 우리 각자에게 알맞은 면류관을 씌워주시길 원하신다. 그 면류관을 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길 원하신다. 빌라델비아 교회 교우들에게 주님께서 주신 말씀도,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3:11) 이런 부탁이었으며, 권면이었다.

주님께서 주시는 면류관은 사람이 주는 보상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주님의 상급을 바라고 착하고 충성된 이에게 주시는 것이다.

 

  1. 면류관의 종류

1) 영화로운 면류관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느니라.”(잠4,9) 이 면류관은 어려움이 있고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겸손한 믿음으로, 고난이 있어도 끝까지 승리하는 이에게 주시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함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태복음 24:11~13)

 

이 반대는 교만한 면류관이다.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은 화 있을진저. … 큰 물이 넘침 같이 손으로 그 면류관을 땅에 던지리니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이 발에 밟힐 것이라.”(사28:1-3)

우리가 믿음생활을 하다가 다된 밥에 코 빠뜨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면 되는데, 끝까지 견디지 못해서 그 면류관을 잃어버린다. 남을 원망하고, 신세를 한탄하지 말라.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 자신이 감당하던 십자가를 후회스럽게 여기지 말고 부활의 소망을 보라. 세상풍조대로 살지 않고 믿음으로 살면서 견디고 이기는 자가 되라.

 

2) 기쁨의 면류관이 있다. 이것은 주로 사람으로 인해 얻는 기쁨이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빌4:1)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살전 2:19)

 

멀리 볼 것도 없다. 여러분의 자녀의 인생이 잘 된다고 생각해보라. 여러분의 자녀가 세상에서 정말 쓸모 있고, 소중한 사람이 되어서, 크게 쓰임 받는다고 생각해보라. 믿음으로 낳은 자녀도 마찬가지다.

이 기쁨의 면류관은 영혼을 사랑하고, 구원하고자 하는 이에게 주시는 면류관이다. 그래서 요한3서 2절,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했다.

3) 영광스러운 재물의 면류관이다.

잠언 14:24, “지혜로운 자의 재물은 그의 면류관이요 미련한 자의 소유는 다만 미련한 것이니라.” 아무리 많은 재물을 얻어도 미련한 자의 소유는 어리석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재물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그 쓰임 하나하나 마다, 의미있고 보람있는 것이다.

 

4) 지식의 면류관도 있다.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아도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느니라.”(잠14:8)

 

5) 의의 면류관. 사람이 인정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옳다 인정하시고 영광이 드러나는 면류관이다. 때로는 옳은 일을 위해 고난을 당하고, 매도를 당하며, 오해를 받아도, 하나님의 뜻이 옳다고 믿는 이에게 주어진다.

딤후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7) 생명의 면류관. 박해와 시험을 이긴 이가 얻게 되는 면류관이다.

약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여러분, 어떠한 면류관이 그려지는가? 믿음으로 사모하고 충성하라.

 

  1. 네 면류관은 빼앗기지 말라.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다는 것 때문에 칭찬을 받았다. 저와 여러분이 이와 같기를 바라신다.

때로는 시험이 있다. 시련이 있다.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낙망하는 순간도 있다. 그래서 믿음을 저버리고, 제 갈 길로 간다. 이에 대해서 갈라디아서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희가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3:3) 조금 어렵다고 신앙을 잃어버리고, 자기 생각대로 하고, 불순종한다. 그것이 육체로 마치는 꼴인 것이다. 시작은 신앙이었지만, 나중은 불신앙이 돼버린 신앙의 어리석음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통을 당하셨다. 우리 인생에서도 고난이 찾아온다. 그러나 믿음은 무엇인가? 십자가 뒤에 나타나는 부활사건이다. 고난 뒤에 서광이 밝아오는 하나님의 영광이다.

이런 것들을 바라보고 주님 주실 면류관을 사모해야 하는데, 죄 때문에, 교만해서, 거짓되고, 세상적인 것으로 눈이 어두워져서 바라보지 못한다. 그러나 이 시간 믿음의 눈을 뜨라.

 

믿음이 중요하다. 믿음은 어떻게 생겨나는 줄 아는가? 들음에서 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다가, 설교 말씀을 듣다가 사모하는 마음이 생기고 간구가 생긴다. 어느 순간, 성령이 증거하는 것을 확신하는 마음이 들고, 흔들리지 않는 때가 있다. 그것을 확인 할 수 있는 또 다른 마음이 있다면, 감사와 평안이다. 여러분, 하나님의 면류관을 사모하고 은혜를 바라면서도 감사와 평안이 없다면, 그 마음이 들 때까지 더 기도하고 주님께 구해보라. 주님은 분명히 성령을 통해서 응답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증거가 있어서 보이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보이는 것이다. 주님께서 주실 면류관을 믿음으로 사모하며, 인생에서 승리하길 바란다. 안되는 것 같아 보이고, 안되는 것 같아보여도, 어느새, 믿음으로 이기고 승리하면 주님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 각자에게 주실 그 면류관이 어떤 것인지는 우리가 다 알 수 없지만, 주님께서 주시는 면류관은 우리가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복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양한 면류관을 주실 것을 들으시고, 들으면서 은혜가 되고, 감동이 되었다면, 그 면류관을 붙들라. 그 소망과 감동을 이시간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해주신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여러분, 그 비결, 빼앗기지 않는 비결은 무엇일까? 감사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홀로 팔 남매를 키우신 어머니의 환갑잔치가 있었다. 사회에서 제법 성공한 자식들 모두 환갑잔치 선물로 많은 것들을 가져왔다. 선물 대신 많은 돈을 주는 자식이 있는가 하면 비싼 금반지를 선물하는 자식도 있었다. 그것들은 값비싸고 좋은 선물들이었다. 그런데 팔 남매 중 가장 가난하게 살고 있는 막내가 선물 대신에 닭찜 한 그릇을 손수 만들어 가져온 것이다.

자식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막내를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평소에도 닭 알레르기가 있어서 닭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값비싼 선물들을 제쳐두고 닭찜을 아주 맛있게 드셨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키우면서 자식들에게 좀 더 많이 먹이기 위해, 무척이나 좋아했던 닭찜을 알레르기가 있다는 핑계를 대며 안 드셨던 것이었다. 막내는 이런 어머니의 마음을 가난하게 살다 보니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렵고 힘들 때, 정말 고맙고 감사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면, 그것을 얻고서도 은혜를 모른다.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통해 너무나 복되고 좋은 면류관들을 씌워주실 것을 확신하고 감사할 수 있기를 빈다.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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