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6.)

 

1.

청년실업이 심각하다. 실직의 위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나라 경제가 어려워서 그렇다는데, 이상한 점이 있다. 사회적인 모순과 부조리는 차치하고서라도, 이 와중에 이직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경제가 어려우면 취업도 어렵고, 그러면 지금 있는 곳에 잘 견디고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고 한다.

 

어느 취업 포털 사이트(사람인)에서 이직의 이유가 무엇인지 조사했다. 복수응답에서 ‘불투명한 회사의 미래’ 64.5%, ‘회사가 더 어려워지기 전에 나오려고’ 46.4%였다. 생존에 대한 불안감이 이직을 생각하고 고민하게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일로 평생 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거겠다. 더 늦기 전에 확실하고 좋은 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것 말이다. 그러다보니 사회적인 내구성도 약해지고, 사회적 불안도 가중된다.

 

2.

이삭도 고민이다. v.1을 보면, 아브라함 때, 큰 흉년을 겪었다. 생존을 위해 점점 남방으로 옮기다가, 급기야 애굽으로 갔다. 생존에 대한 문제는 삶의 기반을 뿌리 채 흔드는 것 같은 고통이다. 그런데 이삭 때도 지독한 흉년이 들었다. 어느 시대, 어느 세대건 같은 어려움은 반복된다.

 

2절은 이삭의 고민을 엿보게 해준다. ‘이집트로 가야할까? 그랄 땅에 머물러야 할까?’ 심각하게 생각을 하고 있다.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별 수 없을 수도 있다. 반대로 인내하고 견디며 버티자니 힘들다. 오히려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 어떻게 해야할까?

 

이집트는 변영이라는 동경의 장소였다. 아브라함과 롯이 분가할 때, 롯이 선택한 곳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비유하고 있다.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땅 같았더라.” 아메리카 드림, 코리아 드림처럼 애굽드림이라 말할 수 있다.

 

이삭은 어제 밤까지만 해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지배적으로 했다.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막연하지만 선한 기대감이 가득했다. 그런데 밤새 신중하게 생각해보니, 아버지 아브라함도 그렇게 해봤으나 결과는 어땠는가? 결국 별수 없이 돌아오고 말았다. 원점이었다.

그래서 그냥 그랄 지역에 머물러야겠다는 생각이 더 크게 자리했다. 우유부단해서가 아니다. 친숙하고 익숙해서 조금만 힘을 더 내면 차라리 애굽보다 나을 수 있기 때문이다.

브엘세바라는 곳이 있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그 장관 비골 사이에 언약을 세운 곳인데, 거기에 에셀나무가 심겨져 있다. 목동들이 지나가면서 그 에셀나무 곁에서 쉼을 청하고 휴식하기도 하는 곳이다. 아버지 때 이루어 놓은 업적이 고스란히 있는 곳이다. 잠시 거기를 극심한 흉년의 피난처로 삼았다가, 다음 일을 도모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소심한 사람 같지만, 신중한 사람이고, 약한 사람 같지만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또 문제가 있다. 날이 밝아 사람들이 깨어나고 인기척이 들리면서, 그랄에 가서 머물자고 하는 생각에 또다시 혼란이 왔다. 사람이 문제다. 혼자는 문제가 아닌데, 사람들을 보자, 현실적인 걱정이 밀려온다. 거기에는 횡포나 행패를 부리고, 요즘 말로 갑질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아브라함 때, 거기에서 우물을 팠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결과였다. 그런데, 아비멜렉의 수하 사람들이 우물을 빼앗고 힘으로 물리력을 행사했다. 결론은 그 와중에서도 그를 더 복되게 하셔서 나중에 아브라함과 이비멜렉이 협약을 맺는다. 서로 후대하기로 말이다. 창21:22절 “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이 믿음을 가지시기 바란다. 그 횡포들에 대해서 아비멜렉은 아무도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몰랐다고 하는데, 시치미 떼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애굽에서는 어땠는가? 낯선 곳에서 강자들의 횡포와 위협이 두려워 아내(이삭의 어머니) 사라를 누이라 했다. 이삭도 그런 일을 당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있는가?

 

세월을 비껴보면, 세대와 세대 사이에 흡사한 부분이 많다. 여기 저기 우리가 사는 곳도 마찬가지이다. 연약하고 부족하고, 세상은 횡포를 부리고 불합리하고, 그것을 대하는 개인도 모순투성이이다.

 

어쨌거나 하나님은 이삭을 이런 고민과 번민 속에 그랄에 머물도록 인도하셨다.

 

3.

어느날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사람을 보낸다. 전령은 아비멜렉의 안색을 살폈을 때, 몹시 안 좋아 보였다. 그 표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래서 길을 재촉하며 달렸다. 막 그 성을 빠져나갔다는 보고가 아비멜렉에게 전해졌을 때, 이삭은 아침부터 왠지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사람에게는 직감이라는 것이 있다.

 

여러분 hyper rational foolish라는 것을 아는가? 고도의 이성주의자를 말한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해서 아무 것도 결정을 못하고 오히려 최종 선택에서 바보에 가까운 결론을 이끌어낸다.

지금 이삭의 마음에 드나드는 생각이 이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신중하게 한다고 했는데, 결과는 이상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고서, 결국은 그랄이라니,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아비멜렉의 전령이 이삭이 사는 동네로 접어들었다.

 

이삭에게 이상한 결과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그가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그런 일이 안 생기겠지, 그렇기를 바랐던 일들이 그에게도 재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설마 내게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이 막상 자기에게 닥칠 때, 되돌릴 수 없는 인생의 모습 때문에 답답하고 후회스럽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사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자기에게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더 이상한 것이다.

 

전령이 이삭을 급히 찾았다. 어떻게 해야할까? 마당을 나서려고 문을 여는데, 이미 전령이 문 앞에 서있었다. 아비멜렉의 호출명령이었다. 제법 이른 시간에, 전령의 표정은 왕의 표정이 그대로 담아있는 것만 같았다.

 

무슨 일로 불렀을까?

다름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같은 일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아내를 누이라 했는데, 그것을 아비멜렉이 알게 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아들이라는 작자가 7-8을 보면 또한 똑같이 행동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화가 잔뜩 났다.

이삭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눈앞이 캄캄했다. 피할 길이나 변명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말이다.

 

이 위기를 과연 모면할 수 있을까?

삶에는 항상 의외라는 것이 있다. 다 내 상각대로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사람의 말이 딱 부러져 능력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하다.

 

아비멜렉의 조치는 무엇이었는가?

 

v.11 “아비멜렉이 이에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나 그의 아내를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더라.”

 

아시는가? 간밤에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나타나 이 일을 이미 풀고 계셨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일하고 계시고, 예비하고 계시다. 이 담대한 믿음을 갖기를 원하신다.

 

내일 망하고 끝나고 길이 없을 것 같아도, 아니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여시고, 함께 하신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그제서야 이삭이 다시 한 번 깨달은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고 기대하시는 것이다.

선택의 문제를 만날 때, 어려움을 만나서 길이 없고 낙심이 들 때, 자기 방법이 실수였고 틀렸음을 알았을 때, 모두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복되게 하심에 대한 약속을 믿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그랄에 머물면서 말씀에 순종하고 명령을 지키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4절에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신다.

 

성경은 하나님의 분명한 지시가 있어 이삭이 따른 것 같이 기록하고 있다. 약속이 있어 따른 것처럼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 삶의 경험태로 바꾸면 이렇다.

 

1) 믿음이 있어 약속에 이르는 경우.

2) 어떤 삶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발견하고 믿게 된 경우.

 

흔히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이 있어 확고한 믿음을 갖기를 원한다. 물론 그럴 때도 있다. 꿈과 계시와 환상을 통해 약속을 응답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경우는 드물다. 믿음이 있어야 그것들도 보이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믿음이 없으면 그럴 수가 없다.

증거가 있어 믿게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어 증거를 얻게 되는 것이라고 말씀드린 바가 있다. 그처럼,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과 인도하시고 동행하시고 복주시고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삶의 경험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구체적으로 펼쳐지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히브리서 11:6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께서 어떤 경우에든 복주시고 상주시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인생의 문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선택이 잘한 선택이고, 어떤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삭이 그랄에 머물게 된 것은 아브라함의 영향이 컸을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복주시고 상주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던 믿음으로, 이삭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들으면서 자랐다. 3, 4절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을 이삭에게도 주시겠다.”는 약속은 그 믿음의 유산이다.

 

두 번째,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에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복주시고 상주실 것을 믿는데도 불구하고 이삭에게 일어난 일들은 무엇인가? 그랄의 목자들이 자신이 파놓은 우물을 빼앗고, 아무 권리도 주장하지 못하게 했다. 당연한 자기 권리가 짖밟히는 경험을 해야 했다.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안되고 나쁜 것만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 중에서 잘되고 좋은 것만 보는 사람이 있다. 이삭이 우물을 빼앗겼지만, 크게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다시 우물을 주셨다. 부정적인 눈으로 보면 빼앗긴 것만 보이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새로 주심에 대한 것이 보이는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 이삭의 약속에 대한 믿음은 더욱 굳어지고 있다. 이삭은 24절에서 다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들으며 새기고 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아비멜렉이 두려웠지만, 그래서 그 같은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또 그랄의 목자들의 횡포와 만행이 속상하고 괴로웠지만, 여러분, 그 가운데 함께 하신 하나님을 여러분도 바라볼 수 있길 빈다. 하나님은, 감당할 힘을 주시고 피할 길을 내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볼 수 있길 원하신다.

 

그러고 보니까, 성경을 통해 우리가 정말 봐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고 있는 ‘과정’이다. 12-13절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지독한 흉년이 찾아와 생의 터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던 이삭이다. 여러분은 어떠신가? 하지만 하나님은 그 땅에서 농사하여 100배나 얻게 하셨고, “마침내”(이 말이 중요하다. ‘마침내’ 우여 곡절이 있었지만, 그 모든 과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어주셨다. 잊지 않으셨다.

 

그러나 기억하라. 100배의 결실을 얻어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고 하는 것조차도 과정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나님은 네 자손이 번성하리라 하셨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완전한 성취가 있기까지, 하나님은 잊지 않으시고 쉬지 않으시고 인도하시는 분이다.

 

여러분, 하나님의 응답과 증거 때문에, 약속이 보이는 게 아니다. 믿음과 그 경험 때문에 그 약속과 증거가 보이는 것이다.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여러분의 이름과 가정을 대입하면서 기도했다. 다시 한 번 불러본다.

 

김지은 집사님(이병로, 민우, 민선)과 그 가정과 그 기업

김성금 집사님(전성웅, 홍지, 민지, 박순자 할머니)과 그 가정과 그 기업

오영림 권사님(송이섭, 창대)과 그 가정과 그 기업

김정호, 김진선 집사님(동규)과 그 가정과 그 기업

엄길종 권사님, 김영주 전도사님, 그 가정과 그 기업

배명례 권사님, 미정, 은정, 성준, 그 가정과 그 기업

장채식 할머니(주달석, 은희), 그 가정과 그 기업

박영숙 권사님(박복동, 용혁, 며느리 이은숙) 그 가정과 그 기업

최미자 권사님, 이운규 집사님(진선, 진범) 그 가정과 그 기업

최옥순 전도사님, 이운찬 집사님(진해, 채옥, 할머니 이현숙) 그 가정과 그 기업

임채옥 집사님(수현, 재현) 그 가정과 그 기업

정화선 집사님(유향, 유리) 그 가정과 기업

김경민 집사님(조현철, 하경, 재현) 그 가정과 기업

 

신명기8:18

“네 하나님 여호와글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야고보서4:2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은혜의 입을 크게 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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