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8.16. / 성령강림절 후 12주)

선교사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무엇일까? 현지적응문제? 언어, 문화, 음식 등. 재정적인 후원과 물질 문제? 아니다. 자녀교육문제다. 70-80년대 목회를 하던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이다. 아는 목회자 중에 3명의 자녀를 둔 후배 목사가 있었는데, 세 자녀 중에, 첫째, 둘째는 머리가 좀 모자라다고 한다. 그리고 셋째는 총명하다고 한다. 이유는 자녀들을 잘 돌봐야 할 때, 목회하느라고 돌보지 못하고 지하방에 살면서 어린아이들을 방치했다고 한다. 그때 만성적인 연탄가스 중독으로 그렇게 됐다고 한다. 교회가 부흥하면서 지하방에서 지상으로 올라왔는데, 그때 태어난 셋째는 아주 총명하더라는 것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만, 예전에는 목회자가 자녀에 대해서 부모로서 갖는 최소한의 사랑까지도 시기하고 질투하는 교우들이 있어서, 아이를 맘편하게 안아주지도 못한 시절도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옛날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분들 중에는 아직도 목회자에게 그때처럼 해줄 것을 바라는 분도 있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아이들에게도 죄이고 (있다가 오후 예배 때도 살펴보겠지만) 모범적인 목회자 상은 아니다.

어쨌든, 자녀에 대해 누구나 바라는 것은, 잘 자라서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훌륭한 인물도 되고, 좋은 유산을 남겨주고 싶은 마음이 모든 부모의 마음이다. 혹 자녀가 이미 다 장성한, 부모라도 그 자녀의 인생길이 열리고 자녀의 그 자녀가, 다음 세대가 행복하고 안전하기를 바란다. 그 다음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분명 어리석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다윗에게 배우고 본받을 점이 있다.

오늘 말씀은 다윗이 죽고 솔로몬이 왕이 됐다는 말씀이다. 말씀은 참 단순하다. 다윗이 40년간을 통치했고 헤브론에서 7년 반, 예루살렘에서 33년간을 다스렸다. 그리고 결국은 그도 죽었다. 죽음 앞에 권세자나 능력자나 모두 예외가 없다.

끝까지 살아서 지켜주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성경은 뭐라 말하는가?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무슨 말인가? 끝까지 자녀를 지켜줄 수 있는 부모는 없다.

 

그 권세자, 능력자, 모든 방패막과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었던 다윗이 죽었다. 왕위를 물려줬으니까, 다행인 것인가? 많은 유산과 유업을 물려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착각이다. 자녀가 그것 때문에 더 괴로워 할 수도 있고, 훌륭하게 물려줬지만, 비참하게 거덜날수도 있는 것이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왕이다. 하나님을 향한 첫마음은 겸손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잃어버리고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 그러나 어느 면에서는 다윗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다윗이 더 불행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울은 그 최후를 그 아들 요나단과 함께 하지 않았는가? 갈등과 애증도 있었다. 생각과 뜻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내는 ‘역시 내 아들’, ‘그래도 내 아버지’였다. 둘은 전장에서 함께 했다.

반면 다윗은 어땠는가? 자녀들 간의 혈투로 시름했고, 나중에 전도유망했던 아들 압살롬은 아버지를 향해 반기를 들었다. 아들에게 쫓기어 도망을 가고, 자신을 수종드는 군사들로 인해 아들이 죽었다. 비극이다.

 

모든 인생에는 명암이 있다. 행복한 측면도 있지만 불행한 측면도 있고, 반대로 불행한 측면이 있지만 행복한 측면도 있다. 이런 점에서 이점에서만큼 다윗에게도 인생의 채찍이요 사람의 막대기 같은 그림자가 있는 것이다. 인생의 가시가 콕 박혀 있는 것이다.

 

인생의 불행의 문제에 해결책이 있는 것일까? 의미 있고 참된 인생의 열쇠는 무엇일까?

주님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사랑하고 용서하며, 나누고 헌신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으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와서 쉬라고 하신다.

주님의 멍애는 쉽고, 그 짐은 가볍다고 말씀하신다. 쉽고 가볍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 (군장/위장군장)

깨닫기 어려울 수 있는 신비인데, 예수님의 십자가와 함께 사랑의 수고를 지녔던 이들이 주님 앞에 나왔을 때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아시는가? 인생의 수고가 자기 욕심 때문에 무거운 것이지, 십자가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주님은 사랑의 소고 뒤에 쉼을 누리길 원하신다. 제자들에게도 예수님은 따로 한적한 곳에서 쉬라고 말씀하셨다.

주님만의 마음이겠는가? 하나님도 일곱 번째 날에는 쉬는 날로 지키라고 하셨다. 주일은 주님의 날, 부활의 아침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우리의 쉼은 바로 그 재생과 재활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불행한 경험을 하고 슬퍼하고 있다면, 주님 안에서 행복에 대한 위로로 쉼을 얻길 축원한다. 괴로움과 불안으로 삶이 마비된 듯하다면, 주님 안에서 희락과 평강으로 쉼을 얻길 바란다. 걱정과 염려로 내일이 근심된다면, 주님 안에서 소망과 확신이 넘치기를 바란다.

속상하게 여겼던 것이 있는가? 억울하게 여기는 것이 있는가? 미움이 있는가? 저주와 냉담한 가슴이 있는가? 모두모두 주님 안에서 참복을 회복하길 축원한다.

 

 

그런데, 여러분, 사울이 다윗을 좇아오지 못할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다음세대에 대한 준비와 노력이다. 사울의 다른 아들 이스보셋은 사울의 왕위를 이어받아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지만, 그는 그것을 감당할 만한 재목이 되지 못했다. 반역자의 손에 죽는, 오히려 그것이 불행이 되고 말았다. 좋은 것을 물려주고 기회를 갖게 해도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 말했던 대로 그것 자체가 오히려 불행할 수 있다.

 

그런데 솔로몬은 그의 아버지 다윗의 왕위를 이어받아 왕위에 오르니 그 나라가 심히 견고했다고 한다.

다들 이와 같은 은혜를 기대하지 않는가? 평범하게 소시민의 삶을 살더라도, 평탄한 인생을 살아가고 행복하고 든든한 인생, 견고한 인생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가? 그렇다면 오늘 말씀에서 길을 찾길 바란다.

 

다윗은 무엇을 했기에 그 물려준 왕위를 이어서 솔로몬이 그의 나라를 심히 견고하게 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좋은 것을 물려주어도 망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아도 성공하는 경우가 있다. 열왕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예는 많지만, 여기서 다 말할 수 없다.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다음 세대가 잘되기를 기도하고, 범죄치 않으며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기를 위해 기도하며, 다음 세대가 하나님 앞에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그렇게 하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준비할 것인가?

흔히 다음 세대, 자녀 세대가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러분 다음 세대가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잘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며, 다음 세대가 희생과 헌신을 해야 할 것이 아니라 지금의 세대가 그렇게 해야 한다. 다음 세대가 용기와 지혜로 어려움을 극복해야 할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세대가 그렇게 해야 한다.

물론 다들 그렇게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작은 차이가 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많은 씨앗을 물려줄 것이 아니라, 우리 세대에서 다음 세대를 위해 눈물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 눈물로 씨앗을 뿌리며 헌신하고 수고해야 다음 세대에서 그 결실을 얻는 것이다. 다음 세대를 위해 눈물의 씨는 뿌리지 않으면서 자연히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창조질서에 위배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씨앗을 뿌리고 그것을 거두게 하려는 방식이 아니라 풍성한 열매를 물려주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결국 어떻게 되겠는가? 그 다음에 열매가 없는 것이다.

 

다윗은 첫째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하나님과 함께 했다. 수많은 증거들이 있지만 대표적인 예가 하나님의 궤를 그의 왕궁에 모셔온 사건이다. 그리고 다윗은 백향목으로 지어진 좋은 궁전에 살지만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는 것을 보며, 마치 방치되고 있는 것 같아 성전을 짓겠다고 가졌던 작정된 마음에서, 하나님을 신실하게 사랑하는 다윗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과거와 뚝 떨어져 신앙생활이 잘되고 믿음이 좋아진 것이 아니라, 평소에 늘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과 함께 하며 하나님을 뜻과 의를 좇았다. 그 결과 성경은 뭐라 말하는가? 사무엘하 3장 1절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지만, 다윗은 점점 강성하여 갔다는 것이다. 또 5장 10절도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과 함께 하며 동행하니까 그마 만큼 강성해지고 견고해진 나라를 만들어갔다. 또 이렇게 잘 되니까 좋은 것을 물려줄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신앙생활을 잘 못하더라도, 내 자녀 세대에는 나보다 더 신앙생활을 잘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믿음이 좋기를 구한다. 그러나 아니다. 그것을 위해 지금 내가 그렇게 해야 한다. 사도행전이 우리에게 증거하는 것은 이것이다. 주 예수님과 그 말씀으로 함께 하는 인생은 형통하며 점점 왕성해져 가는 복을 누린다는 것을 증거한다. 그리고 성령이 도우신다는 것을 믿으라.

 

사도행전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사도행전 12: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사도행전 19: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사람의 말에 있는 것인가? 아무리 말을 잘하고 훌륭해도, 자기 생각을 말하고 주장해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확인시켜 달라는 것 아닌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와 같은 복을 누리는 것이다. 물론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능히 이겨내고 승리한다. 이겨내고 승리하면 무엇이 문제인가, 작은 일에도 실망하고 포기하고 낙망하는 것이 문제 아닌가? 주님은 이길 힘을 주시고, 또 피할 길을 내시며 능히 다음 세대를 위해 준비케 하신다.

 

 

둘째, 다윗은 범죄했을 때 회개했다. 나단이 죄를 깨닫게 해주었을 때, 불필요한 인구조사로 전쟁에 나아갈 인구를 계수했을 때, 회개했다. 인구조사에 대한 회개는 이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 자기 힘을 의지하려 했던 불신앙의 마음을 회개한 것이다. 아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늘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변화된 인생을 구한다. 다윗은 지은 지금의 잘못이 저주의 화살이 되어 다음 세대 어딘가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고 염려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지금의 잘못을 회개함으로 다음 세대에 잘못과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진일보하는 화살이 떨어지기를 구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바뀌지 않는 부분이 있고, 이미 몸에, 성격에, 심령에 굳어진 부분이 있어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다음 세대는 바른 습관과 바른 생활모습과 신앙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성결하고 의롭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니다. 지금 내가 회개하고 변화되어야 하며 새로워져야 한다. 다음 세대를 위하고 자녀들을 위해서 말이다.

 

 

셋째 다음 세대가 하나님을 위해 뭐가를 할 수 있도록 준비와 수고와 노력을 다했다. 잘 알다시피,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싶었지만, 하나님께서 막으셨다. 그러나 자기 세대의 사명이 아니라고 중단하지 않았다. 그것을 위해 얼마나 많이 준비하고 노력했는지, 역대상 29장 2절에는 솔로몬에게 “내가 이미 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준비하였다.”고 증거하고 있다. 우리가 다음세대와 자녀들에게 좋은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오늘 최선을 다하고 수고하고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눈물로 기도로 헌신으로 씨를 뿌려야 한다. 그래야 다음 세대에서 그 씨가 자라난 열매를 맺을 것 아닌가? 지금 씨를 뿌려 놓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에 열릴 과실이 없다.

 

우리 자녀 가운데 아직 믿음이 없는 자녀도 있고, 교회와는 거리가 먼 자녀들도 있다. 그렇기에, 그렇다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정말 다음 세대의 신앙과 믿음과 참행복을 위해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신실하게 사랑하고, 회개하며 변화되고,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을 통해 깨닫는 오묘한 신비는, 다윗이 정말 이처럼 눈물로 씨앗을 뿌릴 때가 언제였는가? 그가 인생 중 산전수전을 다 겪고 인생의 고통을 알았지만, 신실한 하나님은 그 약속과 기도의 응답을 잊지 않으셨다. 솔로몬 때에 그 축복의 꽃이 활짝 피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가 결단하기를 바라신다. 다음세대의 신실한 믿음과 신앙과 참된 복을 위해 오늘 우리가 새로운 신앙으로 변화되고 거듭나며 하나님을 신실하게 사랑하기를 말이다. 비록 어렵고 다음으로 미루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눈물로 씨를 뿌리며 헌신하고 수고하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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