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독생자를 보내주신 사랑의 하나님, 강림절 첫째 주일에 저희를 부르셔서, 예배의 자리에 참여하게 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가지가 앙상해지고 스산해진 거리를 보며, 겨울이 왔음을 알리는 계절에, 따뜻한 주님의 품에 지친 몸과 영혼을 맡기고자 주님 전에 나왔사오니, 주님의 품안에서 참 평화를 누리게 하여 주시고, 성령으로 저희와 함께 하셔서, 저희 예배가 주님께 열납 되는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용서의 말씀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은 다 보호하시고 악인들은 다 멸하시리로다.(시145:19-20)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저와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한다.

 

  1.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

오늘부터 강림절의 시작. 예수님을 기다림으로부터 시작해서 성탄절, 주현절, 사순절, 부활절, 성령강림절에 이르러 왕국절까지 새롭게 교회력이 시작된다. 어제까지 안좋았던 기억은 잊으라. 지금 속상한 일, 괴로운 일을 당했더라도 빛으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며 소망의 기쁨이 넘치길 기원한다.

 

그 소망과 은총이 또한 우리에게 능력으로 나타나기를 원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신다.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어려움에서 이길 지혜를 주신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을 보냈다. 나이가 들고, 연로해졌다. 세상과 떨어져 살면서 감도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도구로 귀히 쓰였다. 왜?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 때문이었다. 그에게 하나님께서 능력의 지팡이를 들려주셨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인도하게 하셨다. 나는 입술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라고, 주님께서 부르신 사명 앞에 용기를 내지 못했다. 아무리 자신을 둘러보아도 능력이 없었다. 살펴보아도 그럴만한 힘이 없었다. 예레미야도 비슷했다. 부정한 권력과 세상과 싸우기에 두려웠다. 그렇기에 나는 아이라 말을 잘 할 줄 모른다고 했다. 공통점은 무엇인가? 자신의 약함을 알았다. 감당하기에는 부족한 것을 알았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능력을 주셨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이런 능력을 주시고 부르시는가? 아시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나님은 특별한 누구에게만 이 능력을 주시는 게 아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겸손히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에게, 믿는 자에게 주신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약할 때, 강함이니라고 고백했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분께서 여러분에게도 능히 능력을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란다. 지혜가 부족한 자에게는, 구하면 꾸짖지 않으시고 후히 주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데, 왜 걱정하는가? 왜 불안해 하는가? 담대하라. 용기를 내라. 믿음을 가져라.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능히 감당할 힘과 능력을 주신다. 주님 앞에 나온 우리 모두가 이 은혜를 충만히 받아 누리며, 돌아갈 수 있기를 빈다.

 

이 능력은 듀나미스(dunamis)라고 한다. force, power와 다른 점은 외부적인 힘이 아니라 내적인 힘에 가깝다. 무너뜨리고 제압하는 힘이라면 감당하고 버티며 결국에는 승리하는 힘이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어떤 사물을 옮겨야 한다. Force나 Power은 직접 힘을 가해 옮기게 하는 힘이다. 그런데 Dunamis는 그 사물이 스스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힘이다. 사람에게 Force나 Power을 사용하면 폭력이 되기도 한다. 강제적으로 무엇을 시킬 때, 억지로야 할 수 있지만 때때로 부당하게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Dunamis는 자발적으로 하게 하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오늘은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에 대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특별히 고린도 교회에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살펴보고, 우리가 어떤 능력을 사모해야할지, 가늠해볼 수 있기를 빈다. 이 큰 능력을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려고 주님은 우리를 부르셨다. 누구든지 그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는 이 능력을 넘치도록 부어주신다.

 

믿지 못하시겠다면 고린도 교회를 보자. 고린도교회에 이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다. 고린도전서에는 ‘능력’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고, 그에 해당하는 여러 단어들도 많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예가 ‘은사’라는 것이다.

 

  1. 능력의 선물

오늘 말씀은 바울 편지의 서두부분이다. 3절에서 바울은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원하는 인사말을 건넨다. 고린도 교회에 대해 눈을 감고 생각하면, 참 떠오르는 것이 많았다. 우상을 숭배하고, 겉으로는 활기차지만 안으로는 음란하고 타락했던 도시였다. 거기에 어떻게 하나님을 알게 됐는지, 이 안에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서며 성장하게 됐는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능력이었다.

 

어떤 능력들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가?

하나님은 고린도 교회 교우들에게 각 사람마다 필요한 은사를 주셨다. 6-7말씀을 보라.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증거가 견고하게 되어’,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고린도전서12장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어떤 사람에게는 병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을 분별함을” 즉 성령의 역사를 통해 능력들이 나타났다.

때로는 인생에서 질병을 만난다. 실패를 만난다. 환난을 만난다. 정신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고 고통을 당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능히 이길 힘들과 능력을 주셨다. 병고침을 받고, 실패를 딛고 일어났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로마에서 터전을 잃고 이곳까지 왔지만, 다시 시작했고 어느 정도 사업도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바울을 도와 복음을 전하는 일꾼으로 쓰임받았다. 주님께서 주신 수많은 은사와 능력으로 가능케 된 일임을 믿으라.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각자에게 신령한 은사를 기름 부어주시기를 축원한다.

 

나에게는 능력이 없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은사를 부어주셔서 그 일을 감당하게 하신다. 여러분 이 은혜를 경험하며 더욱 견고한 믿음 가운데 서시기를 원한다.

 

  1. 하나님 능력의 비결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이유 때문에, 무슨 공로나 자랑이나 조건 때문에 이 능력들을 받은 것일까? 비결이 무엇일까? 고린도교회의 모습을 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11절 말씀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여기서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고린도교회는 갈등과 분쟁을 겪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교인들 간의 갈등문제를 세상법정까지 가지고가서 세상에 추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파당이 나뉘어서 갈등이 심했다. 바울에 대해서 모함하고 이간질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단이 들어와 교회를 어지럽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회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할 수 없다. 인간적으로 생각해서, 이 능력을 받을 만한 조건과 상황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빼앗기거나 깎아 먹는 상황이 더 많았다. 그런데도 이런 능력이 나타났다는 것이 이상하다.

 

그렇다면 과연 능력의 비결은 무엇일까? 오늘 말씀에 그 답이 있다. 4절에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께 칭찬받고 이 선물을 받을만한 인간의 공로나 조건이 아니다. 이 점을 기억하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로 말미암아 주신 은총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가 다 부족하고 연약하나 하나님은 예수로 말미암아 능력을 주시는 것이다.

 

6절에 ‘그리스도의 증거가 견고하게 되다’는 말은 고린도전서 12장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말씀했다. 그러니까, 예수 이름에 능력과 권세가 있음을 깨닫길 바란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굳게 믿길 원하신다.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의 구원자이시며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다. 그리고 그 은사를 통한 ‘능력’을 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을,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는 구주이심을 확신하며 고백할 수 있길 빈다. “주님을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요한복음1장 12은 증거한다. 주님을 영접했는가? 영접했다면 마음에 잘 모시고 있는가? 그 이름을 믿고 있는가? 주님은 여러분을 능히 도우신다.

 

  1. 참능력은 하나님께 있다.

여러분, 우리가 영적으로 조심할 일이 있다.

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사와 능력은 겸손히, 주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v.5을 보면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러분 이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아는가?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다는 것’ 말이다. 여기서 다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언변과 지식이 풍족해서 오히려,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는 것이다. 대학교수 3명이 부산을 가려다가 수원도 못가서 돌아온다고 한다. 왜? 자기주장과 고집스러운 생각이 많아서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해서, 관련법을 만들고 그럴싸한 정책을 만들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생각과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그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예수 안에서 이루어지는 언변과 풍족한 지식은 어떨까? 좋은 결과를 가져올까? 경험상 아닐 때도 많다. 교회에서 보라. 많이 알고, 잔소리처럼 정답을 많이 말하는 사람이 능력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고린도 교회는 잠시 교만해져서 많은 능력을 받고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 남을 정죄하는데 사용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웠다. 이 사실을 기억하라.

이럿을 우리가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때, 그것을 겸손히 서로를 위하여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그 능력으로 겸손하기 보다는 교만해지고 자기 의를 드러내려고 할 때, 하나님이 영광받지 못하고, 그 영광이 가려졌다. 능력이, 능력이 되지 못하고, 능력이 헛된 일에 소모됐다. 이것을 우리가 조심해야 한다.

 

2) 또한 이것을 주의하라.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또한 하나님께 이미 능력과 은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없어 사용하지 못한다.

여러분, 우리가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전한 내용을 우리가 모르는가? 겸손한 대신 교만해서, 믿음 대신 자신의 생각과 뜻을 앞세워서, 하나님의 능력 대신 영광을 가리우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엄히 꾸짖기도 한다. 4:7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여러분 참 능력은 하나님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란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말과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있다(4:20). 교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 이것을 믿어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교회 다니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의 특징은 무엇인가? 은혜를 받을 수 있고 위로와 평안은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교회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1. 십자가 능력

주님을 영접하고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이에게 주시는 능력은 무엇일까? 여러분 그것이 십자가 능력이다. 가장 중요한 능력은 십자가의 능력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에서 “너희 중에 예수 그리스도와”(즉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신 것과)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를 작정했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통을 당하셨다. 그러나 주님은 능히 이겨내시고, 하나님은 죽은 자 가운데 살리셨다. 그 주님이 바로 우리의 구주이시다. 십자가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능력이다.

 

지금 고난 가운데 있는가? 죽을 만큼 어려움에 처해있는가? 하나님의 능력이 절실한가?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통을 당하셨지만, 죽음까지 이기셨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그 능력으로 우리에게도 이길 힘을 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그 능력과 은사를 철회하실까? 고린도 교회가 하나님의 은사와 능력을 많이 받았지만, 그 뜻에 부합하지 못했다고 해서, 사랑과 은사를 철회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시행착오나 잘못도 선한 것으로 이끄시는 분이시다. 자녀에게 무엇을 맡겼을 때, 실수하더라도 끝까지 맡겨주고 믿어준다. 그러면 그 시행착오를 통해서 자녀는 성숙해간다.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바라시는 것은, 그 주신 능력이 하나님의 뜻과 나라와 영광을 위해 귀히 쓰이기를 원하는 것이다.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라.

 

내년도 표어. 그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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