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2. / 성령강림절 후 21주)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 11월의 첫 번째 주일에 저희를 부르셔서, 예배의 자리에 참여하게 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노랗게 물들어가는 은행잎들이 가을의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계절에, 주님의 온유한 음성에 취하고자 주님 전에 나왔사오니, 지치고 상한 심령을 어루만져 치유하여 주시고, 성령으로 저희와 함께 하셔서, 저희 예배가 주님의 영광을 높이 드러내는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대속자가 되시고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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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골1: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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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빈다.

오늘 말씀은 무엇보다, 제게 주시는 말씀이다. 저는 이 말씀을 확신한다. 담대하게 앞장서라는 소명의 말씀이다. 또한 여러분에게도 약속하신 말씀이다.

 

우리 신앙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v.7을 보면, 모세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도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선분이 아니라 직선이다. 무슨 말인가? 우리에게도 계속되는 말씀이다. 거기서 멈춘 말씀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임하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이 자리에 임재하시고, 우리 ‘안에’, ‘가운데’, 거하고 계시다. 믿음으로 그 눈을 뜨라.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현존하심을 드러내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그 살아계심, 현존하고 계심을 드러내길 원하신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우리를 통해서이다. 그러기에 오늘의 말씀은 여전히 우리가 붙들어야 할 말씀이다. 예수님은 임마누엘이시다.

 

질문을 던져보다. 지금 요단강 앞에서 여호수아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우리가 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출애굽세대이자 광야를 거쳐 온 세대이다. 40년 동안이나, 표류하듯 말이다. 광야, 그곳은 척박하고, 내일의 염려와 걱정이 앞서고, 아무 것도 장담할 수 없는 곳이었다. 물론 만나와 메추라기라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것마저 끊으시는 것은 아닌 지, 늘 불안했던 것이 사실이다.

또 광야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만 경험했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채찍과 회초리도 있었다. 죄로 인한 것, 불평으로 인한 것, 불신앙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회개하고 뉘우치지 않아, 그 전까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호되게 대하셨다. 그런데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목이 곧은 백성과 같은 모습을 보였는데, 꼭 우리의 모습과도 같다.

‘낮의 해와 밤이 달이 너를 상치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단순히 낭만적인 표현이 아니다. 낮에는 뜨거운 고통과 밤에는 차갑고 추운 고통이 우리를 타는 듯 메마르게 하고 시리게 한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하나님께서 지키지 않으셨다면, 그 광야를 거쳐 올 수 없었을 것이다.

 

요단강 앞에서 선 여호수아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적어도 여호수아와 우리가 비슷한 점이 있다.

우리는 인생의 강물 앞에서 멈칫한다. 광야와 같은 척박한 삶을 이겨왔다고 해도 말이다. 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람은 적응하기 나름이다. 광야 생활에 적응하고 나니, 그 생활이 익숙해지고, 나름 편해지면, 뭔가 새로운 도전이나 시도 자체가 힘겨울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 이 강만 믿음으로 건너면 되는데, 바로 그 직전에서 멈춘 적은 없는가?! 이스라엘은 광야를 거쳐, ‘여기’까지 왔지만, 그런데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 그 앞길을 막고 있는 요단강을 건너야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1장에서 ‘강하고 담대하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라.’ 그 심령을 감동시켜 주셨다. 만져주셨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용기를 내지 못한다. 걱정과 염려와 두려움이 앞선다. 잘 견디며 왔다고 해도, 마지막에는 애굽을 완전히 탈출하기 위해 홍해를 건너야 했던 것처럼, 완전한 성취를 위해 건너야할 강이 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도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 했던 것처럼 동일한 은혜로 역사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믿음을 시험해보시는 것 같지만, 깨달으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

 

강하고 담대해지라는 하나님의 격려는 무엇일까?

모세는 없다. 그가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힘과 용기가 됐는데, 이제는 심리적으로 독립, 자립해야 했다. 존재의 의미란 그런 것이다. 인생에서 이것도 또 하나의 과제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믿음으로 강하고 담대해져야 하는 것이다. 성숙해진다는 것은 이런 것 아닐까? 자립심 말이다. 주변상황과 환경이나 여건에 상관없이, 스스로 일어서고, ‘해내는 힘’, 그 용기를 스스로 내는 사람을 성숙하다고 말할 수 있다. 상황 탓하고 남을 의존하다가 실망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에게서 성숙을 찾아볼 수 없다. 그시간 마저 자신의 존재를 아름답게 꽃피우는 꽃시간으로 누릴 줄 아는 사람. 기억하라. 분명 열매를 맺게 된다. 결실을 보게 된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며, 하나님의 섭리다.

 

여러분 광야와 같은 인생에서, 큰 강 앞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란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그래서 강하고 담대함을 원하신다.

4절을 보라.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참 기가 막히고 막막하다. 두려움은 왜 생기는가? 우리가 만나는 환란이라는 실체 때문이 아니다. 모르기 때문이다.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려움의 실체는 그러니까 막막함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부딪쳐보면 별것 아닐 때가 많다. 오히려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던 일들이 실제 만나보면 ‘장난’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런데 주님은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고 계실까? 5절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이전에는 지나보지 않은 길을 걷겠지만, 또한 기이한 일들을 항하시리라.’ 우리를 위한 약속이다. 하나님의 기이한 방법이 참 많다.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랴!!

 

하나님의 방법은, 이성과 합리성, 추론, 인간적인 계획이나 방법이 아니다. 기이함이다.

홍해가 갈라지는 것이 그랬다. 가나안의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는 것이 그랬다. 사르밧 과부의 부엌과 살림살이가 그랬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그랬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강을 건너는 가장 좋은 준비는 무엇이며, 이와 같은 은혜의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며, 그 현존하심을 바라봐야 한다(v.3). 이것이 우선시 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시는데도, ‘지나보지 못한 길’을 걷게 될 수도 있다. 어리석게 말이다. 그래서 주의해야 한다.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3) 언약궤란 하나님의 현존하심을 상징하는 성물이다. 우리에게는 무엇인가? 십자가 복음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만 묵상하라. 내 마음에 큰 울림과 감동과 확신을 주시는 말씀을 붙잡으라. 말씀에서 지혜를 얻고, 십자가 복음에서 능력을 얻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이기에, 우리의 마음에 감동이 되는 말씀은 의심 없이, 하나님께서 내 심령에 울림을 주시는 말씀이다. 교훈, 책망,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며, 온전하게 한다. 십자가 복음이란, 믿지 않는 자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나,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십자가 뒤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음을 바라보며 확신함을 통해, 부활의 능력 되신 주님께서 능히 우리를 도우신다.

그러기 위해서 목회자의 도움도 받으라. 하나님은 광야의 백성들을 위해 제사장들(주의 종들)로 하여금 백성을 축복하도록 하셨다. 찾아와서 상담하고, 기도도 요청하고, 하나님의뜻을 구하며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목회자에게 이런 것 기대해야 하는 것 아닌가?

4절에 ‘이천 규빗 쯤’ 거리를 두라고 말씀하신다. ‘거리를 두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인가? 하나님의 말씀과 멀어지는 간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말씀을 숙고하고 깨닫고 받아들이는 간격을 의미한다. 그러하면 어떻게 된다고 약속하고 있는가?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지혜와 방법이 생긴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성결해야 한다. (5절)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성결이 지금 이 일과 무슨 상관이 있나?’하는 의문이 들 때가 생긴다. 성결하지 않는다고 당장 일이 크게 잘 못되는 것도 아니고, 성결하게 하지만, 당장 무슨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런 상황을 만난다. 기도한다고 당장 효과를 보는 것도 아니고, 안한다고 망하는 것도 아니고 갈피를 잡지 못할 때가 있다. 예배도 마찬가지이다. 일이 바빠 예배드리지 못할 형편이 생긴다. ‘하나님께서도 아시겠지’라고 생각하거나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형편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모자를 때가 더 많다. 그러면 자기 인생은 정말 마이너스가 된다. 그럴수록 더 기도하고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물론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부정 탈까봐, 그래서 일을 그르치게 될까봐, 성결하려고, 누구나 노력한다. 그러나 당장의 해결방법을 찾고, 큰 강을 만나 어찌해야할 바를 모를 때, 드는 생각이 바로 이 성결에 대한 의심이다.

(최미자 권사님과 대화; 기도하지 않고 해결하려고 하면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려고 한다. 지름길을 선택하려고 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먼 길을 돌아가거나 꼬이는 경우가 있다. 오히려 반대로, 기도하고 절제하면서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된다.)

 

왜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고 할까? 여러분 하나님은 그 노력을 귀하게 보시는 분이시다.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이는 것 같지만, 성결하려고 노력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그 정성을 귀하게 보시고, 하나님께서 도우신다.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 같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더딜지라도 정녕 이루신다.

성결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쉽게 말하자면,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두려는 마음이다. 우리의 마음은, 교만하고 나태하기 쉽다. 그래서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마음으로 쉽게 변질 된다. 성결하라고 하는 마음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려는 것,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거나, 세상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동시에 섬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담으려고 하는 것! 시간과 물질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고, ‘뭘 하고 싶은 어떤 욕구’이나 ‘욕심’을 절제하여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 이런 성결한 삶을 위한 수많은 노력들 속에,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를 하나님께서 어찌 긍휼히 여기지 않으시겠는가?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심령 중심에 계시기에, 그 확신을 가지고 용기를 내야 한다.

v.8을 보라.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생각해보라. 물이 흐르고 있다. 얕은 물이라면 상관없지만, 그 물살의 세기와 깊이기 자신을 휩쓸어 버릴지도 모른다. 용기와 믿음을 가지고 막상 물 속에 들어섰는데, 물살이 줄지 않고, 멈추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누구나 이 지점에서 망설인다. ‘광야도 괜찮은데…’, ‘여지껏도 살아왔는데…’, 선뜻 시작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시작만 해도 이미 반을 한 것이다. 용기를 내지 못하고 도전하지 못한다. 그러나 여러분, 도전할 때 도전하라. 용기를 낼 때 용기를 내라. 결단할 때, 결단하라.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

여러분, 물살이 멈추지 않고, 강이 깊어 빠질 것 같지만, 막상 발을 담그면,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 v.13절을 보라.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건너지 못할 강을 마른 땅처럼, 건너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기이함이 나타나는 것이다. 엄두도 못 낼만한 일이었는데, 감당치 못할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러분, 첫 번째, 두 번째를 붙든 사람은, 큰 강물보다도 더 커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제사장들이’ 여러분 저는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여러분 인생에 놓인 큰 강들을 발바닥으로 밟고 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함께 하심을 확신하고 있다. 저 역시 믿음을 다해 힘을 내고, 확신과 소망 넘치는 기쁨 가운데 있다. 할렐루야.

 

덤으로 주시는 은총이 있다. 무엇일까? 10절을 보라.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 ‘반드시 쫓아 내실 줄을 믿으라.’ 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예비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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