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1일

 

죄인들을 불러서 거룩하게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 오늘 복된 주님의 날에 저희를 부르셔서, 예배의 자리에 참여하게 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올림픽 선수들이 보여주는 패기와 도전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에서, 우리 영육의 강건함이 어떠해야함을 깨닫게 해주는 때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실 믿음과 용기와 강한 힘을 사모하며 예배 자리에 섰사오니,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알게 하시고, 그 사랑의 능력을 감사로 깨닫게 하옵소서. 성령으로 저희와 함께 하셔서, 저희 예배가 주님께 열납 되는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대속자가 되시고,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1. 이른 아침 일어난 사건

이른 아침, 바울과 실라가 숙소를 나섰다. 참 신기하게 생긴 모임에 나서기 위해서였다. 마게도냐의 첫 성읍이었던 빌립보에는 아무런 연고가 없었다. 기도할 곳이 있나 아침에 나섰다가 우연찮게 루디아를 만나게 되었고, 그가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가족들과 지인들이 주님을 믿게 됐다. 그 모든 과정이 참 신기했다. 하나님의 예비하심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그날 아침도 이 모임에 가려고 집을 나서는데, 누군가 몇몇 사람들이 우악한 손으로 바울과 실라의 팔을 꺾더니 어디론가 끌고 가는 것이었다.

 

  1. 신앙의 전성기

누구나 인생의 전성기가 있다. 외모의 전성기, 명성의 전성기, 활동의 전성기 등등, 자랑하고 싶은 전성기가 있다. 과거 유명인들의 근황을 알려주는 유튜브 채널이 있는데, 한 때 너무나 유명했던 사람이 지금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래도 잘 이겨내고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지난 주에 예배를 마치면서 여러분의 신앙의 전성기에 대해서 생각해보시라고 권했다. 생각나셨는가? 누구한테 물어보니까, 초등학교 여름성경학교 때라고 말해줬다. 그 이유가 여름성경학교와 함께 신앙이 쑥쑥 성장했다고 한다. 여러분은 어떠신가?

 

  1. 바울이 배설물로 여기는 것

빌립보서 3장을 보면, 바울이 무엇이든 유익하던 것을 해로 여길뿐더러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하고 있다. 왜 그럴까?

 

#1. 출신과 출생 : 그는 앞에서 소개하기를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출생이나 출신에 흠잡을 데가 없다. 누군가 이렇게 자랑을 한다면 내심 혈통이나 유전적인 우월성을 내세우려는 의도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강남 8학군 : 예전에 제가 마산에서 4년간 목회를 하고 인천의 한 교회 부담임목사로 오게 됐는데, 어느 날 한 여자 집사님이 제가 마산에서 왔다는 말만 듣고 아내나 저나 사투리를 안 쓰는 게 신기했나보다. 저는 아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제가 사투리를 안쓰는 게 왜 신기한 건지 모르겠는데, 자주 이런 식으로 말하곤 했다. “목사님이 시골에서 와서 잘 모르시나본데”, ‘내가 그렇게 시골스럽게 생겼나’ 한 번도 그런 말 들어본 적이 없는데…, 의아하게 생각했다.

어느날 제가 강남 8학군(지금은 이런 게 없어졌지만)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서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쏙 들어갔다.

 

그만큼 사람들에게는 출생이나 출신에 따라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기 쉬운데, 바울은 전혀 손색없이 오히려 내세울 만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2. 전도유망함 : 계속해서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한다. 성경에서 바리새인에 대해 부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져서 안 좋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바리새인이 되고 율법에 흠이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는 자기관리와 노력을 무시하면 안된다. 그는 당대 최고의 율법학자라고 칭송받는 가말리엘의 수제자로서, 지금식으로 생각하면 최고 명문대학 수석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지기까지 했는데, 모든 사람의 각광을 받고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그는 한도 끝도 없이 오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과히 전성기라 할 수 있지 않은가?

 

#3. 그런데 그는 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한다. 얼마든지 그의 인생의 전성기를 그리워하고 자랑할 수 있다. 바울은 고린도에 재차 보낸 편지에서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노라”(고후12:1) 말한다.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람들, 거짓 선생과 지도자들이 자기자랑과 과시로 성도들을 미혹했다. 사람들이 그 어리석은 길로 따라갔다. 대신에 바울을 비난했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으니 정말 그런 줄 알고 무시하기에 이른 사람도 있다. 자기자랑을 일삼는 사람들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똑같이 자기를 내세울 수 있다.

사람들이 누구를 더 믿음직스러워 하고 신망할까? 자기자랑을 내세우고 자기피알을 잘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중에 말이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자기를 잘 포장하고 내세우는 사람들에게 끌린다. 그래서 자기피알과 엇필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부득불 자랑하노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고후12:5절에서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고 한다. 왜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않겠다고 했는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12:9)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력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12:10)

 

  1. 감옥에서 찬송과 기도를 하는 바울

#1. 숙소를 나서자 바울에게 일어난 사건은 무엇인가? 바울의 팔을 꺾어 끌고간 사람들은 누구인가?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유린하며 돈벌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귀신들린 여자가 여러 날 바울을 따라다니며 괴롭게 했다. 처음에는 외면하려고 했다. 그를 돕는다는 것은 그와 관련된 검은 유착관계를 건드리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단순히 바울이 귀신을 쫓고 그녀를 구해낸 사건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조폭이나 다름없는 조직, 잘못된 카르텔과 시스템에서 한 영혼을 구해내기 위해 용기를 내야하는 일이었다. 보복이 있을 지도 모르겠기에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우리사회도 마찬가지이지만, 어느 시대건 정의로운 일을 하고 불의와 맞선 사람, 거짓을 폭로하고 그릇되거나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사람이 매도되고 오히려 악인이 의인임을 자처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정말 불의를 저지른 사람은 수사하지 않고, 작은 흠이나 약점을 크게 잡아서, 털어서 먼지를 내어 조리돌리고 몰매를 가하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바울도 마찬가지였다. 19절을 보니까,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고 갔다.” 그리고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이상한 풍속을 전하며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한다.”고 (예수의 복음을 전했던 것을 말한다.) 억지를 부리고 몽니를 부렸다.

모두가 한 통속이었다. 22절,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하며, 심하게 때린 후 옥에 가두었다.

 

#2. 이 성에 바울과 실라 편이 있을까? 그를 엄호해주고 지켜줄 사람 말이다. 바울은 발에 차꼬가 채워지고 깊은 옥에 가두었다. ‘깊은 옥’이란 풀려날 희망이 전혀 없는 곳이다. 사람이 죽어나가도 그 행방을 알 수도 없고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도 않는 쓰레기통 같은 장소이다.

 

#3.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다. ‘한밤중’ 가장 깊은 어둠과 절망의 상황을 암시한다. 바울과 실라는 그 한밤중에 기도하며 찬송을 부른다. 외부적인 어둠이 내적인 확신과 평화를 빼앗거나 소멸시킬 수 없는 순간이었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력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12:10)

 

하나님께서 마음의 등불이 되어주셨고 억울하고 괴로운 중에 위로가 되셨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니, 영광스러운 마음이 그들을 감쌌다. 어둠이 깊고 절망스러운 상황이 심할수록 그들을 비추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감사와 찬송과 기도로 넘쳐났다.

 

그래서 고린도에 재차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8-10) 고백하고 있다.

 

동일한 은혜를 우리 모두가 깨닫고 고백할 수 있기를 빈다. 하나님은 영광은 세상적인 번영과 축복과 전성기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 아래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 아래에서 백부장의 입을 통해 고백되는 바와 일치된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막15:39)

 

#3. 신앙의 전성기 :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걸어갈 수 있었을 때, 세상에서 의지할 데라고는 아무데도 없고 물 위를 걸어가듯 주님만을 바라보고 걸어가야 했을 때, 눈물과 슬픔이 눈 앞을 가리고 고난의 강을 마른 땅처럼 건너가야 했을 때, 바로 이런 때가 우리 신앙의 전성기가 아니었을까?

바울이 인생에서 자랑할만한 것들을 버리고 배설물처럼 여기노라 말했다. 그 인생의 전성기는 출생, 신분, 지위, 성공이라는 눈에 보이는 화려함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약할 때 강함되시고, 기뻐할 수 없을 때 기뻐하고, 기도할 수 없을 때 기도하고, 감사할 수 없을 때 감사할 수 있는, 즉 하나님과 함께 하는 순간이 바로 인생의 전성기였던 것이다.

 

  1. 역사하시는 하나님

#1. 26절 “갑자기” 이는 무슨 의미인가? 시간의 단절이나 예상치 못한 순간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역사하시는 순간을 의미한다.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다.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매인 것이 다 벗겨졌다. 아무리 죄수라지만 다친 사람 없는 지 걱정인데, 그런 보고는 없다. 도망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지진 자체를 곧 하나님의 뜻으로 대입할 수도 없다. 대신에 오묘한 섭리가 있다. 간수가 죄수들이 모두 도망한 줄 알고 자결하려고 하는데, 바울이 소리치며 말렸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이것이 기회가 되어 간수의 집안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기회가 됐다. 다음날 무슨 일인지 상관들이 부하들을 보내서 석방하도록 했고, 풀려났다.

이 성에 아무도 바울과 실라의 편이 되어 줄 사람이 없었던 것 같지만 첫 번째는 신뢰하고 더 가까이 하고 싶어 찬송과 기도를 올려드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그리고 이것도 알아야 한다. 바울과 실라의 석방을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개입해주시기를 기도했던 루디아와 그 신앙공동체가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고 보면 신앙의 전성기는 또한 함께 기도하고 사랑으로 열심을 다하는 믿음의 공동체와 지체들과 함께 해야한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신앙의 기쁨을 누릴 때는, 우리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역사하시며 도우시는 것을 경험할 때이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 노력을 다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힘과 능력만으로 안될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부분이 있다.

지금이야 말로, 우리가 신앙의 전성기를 누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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