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9일
피조물을 통해서 영광 받으시기를 기뻐하시는 창조주 하나님, 이 땅에 있는 모든 교회가 주님께 예배하는 거룩한 날에 저희를 부르셔서, 예배의 자리에 참여하게 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인간의 욕심과 죄악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파괴되고 환경이 오염되어 그 고통을 고스란히 겪고 있는 때에, 복의 원천이신 주님이 주실 위로와 희망을 기대하며 주님 전에 나왔사오니, 지치고 피곤한 심령에 새로운 힘과 용기를 더하여 주시고, 성령으로 저희와 함께 하셔서, 저희 예배가 주님께 합당한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하나님을 사랑하면
성경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승리와 영광
어려움이 없거나 고난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때 하나님은 그를 모른 채 하지 않으시고 도우셨다.
다윗은 환난과 고난 중에 가장 큰 도움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고 고백한다. 어려울 때,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면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심을 고대했고 확신했다. 환난과 시험 중에, 실망과 낙심 중에, 이러기가 쉬운가? 그러나, 이것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하나님과 함께 하고자 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 그는 나의 요새, 반석, 산성… 고백하고 있다.
반면에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우상에게 이끌렸던 사람은 어떤가? 그는 잘 되는 듯 보여도, 열조로 돌아갔을 뿐이다. 시험과 환난 혹은 시험과 낙심 중에 더욱 그러기 쉽다. 위안처를 찾고 마음이 흐르는 대로 끌려가다보면 세상적으로 변하기 쉽다.
은을 사랑하는 자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그것을 만족을 모른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은 자는 잠시 잠깐은 좋았을지 모르지만 영원한 만족을 모르고 열조로 흩어졌다.
그러니 성경은 안개 같은 인생, 이슬과 같은 인생, 들풀과 같고 시들어버릴 꽃과 같은 인생을 향하여 무엇이라고 하는가?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한다. 자기 기분과 감정과 인간적인 생각에 이끌려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에 이끌려 살기를 바라신다.
- 하나님을 사랑하라.
자.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막연하고 어렵게 느낀다. 비슷한 게 있다. 데살로가전서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전한다. 이것을 시간속에서 이해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설령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수많은 실패와 낙오에 대한 감정이 뒤따른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는 것”은 어떤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지 않는가? 하더라도 인간의 백절불굴의 의지와 공로가 없으면 불가능해 보인다. 대부분 어렵다는 것을 경험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이 의미는 이렇다. 기뻐할 수 없을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기도할 수 없는 상황이나 기도가 가로막혔을 때에도 기도하며, 감사할 수 없을 때에도 감사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고난이나 환난이나 어려움이 빨리 지나가고, 이길 수 있다. 불행한 상황에 불굴의 경험을 우리에게 가져다 준다.
그렇다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것은 무엇인가?
- 마음을 다하고
이렇게 묻자. 여러분의 마음에는 지금 무엇이 있는가? 피로, 근심, 걱정, 불신, 분노, 자존심, 욕심, 경쟁, 불신앙? 하나님이 있다지만, 정말 하나님이 이 시간 내 안에 찾아와 계시고, 임재해 계신지 돌아보라. 여러 가지 갈등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은가?
그 때, 어떤 선택을 하는가? 하나님이 마음의 중심에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닌 것들이 자기를 온통 차지하고 지배하고, 지배당한다.
그래서 로마서는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본성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니까,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즐거워하고 사모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이 나를 지배하려고 한다. 마음을 열지 못해 남들 다 받는 은혜, 하나님께서 거져 주시는 은혜를 받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에는 죄의 길을 택하고 만다.
그러한 일이 있어도, 어떤 일이 있어도,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 두기를 사모하고, 그렇지 않은 마음과 싸워 이기기 바란다. 하나님은 그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 바라신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고서 사랑할 수는 없다.
다윗은 시편73편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실족할 뻔했고, 넘어질뻔했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악인의 형통함과 오만한 자가 잘 되는 것을 보면서 질투하였다고 한다. 하나님이 참으로 좋으신 분이라는 것은 알고,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특히 그러하다는 것을 알지만 말이다. 왜 실족한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13절에는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회의적인 마음이 그를 괴롭혔다. 하나님을 마음에 둘 수 없었다. 그러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서, 심난(心亂, 21)했다.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해야하는가? 다윗은 “내 양심이 찔렸나이다.” 고백한다. 신앙의 양심에
찔려, 그가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 하나님을 찾으라는 음성을 듣기 시작했다.
23절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실족한 마음이 그에게 있었지만, 신앙의 양심이 그를 찔러, 하나님을 마음에 다시 모시고 나니, 하나님이 그 마음을 오른손으로 붙드시는 경험을 하게 된다.
- 뜻을 다하고
뜻을 다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힘들 때는 언제인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고, 따를 수 없을 때. 이사야는 하나님 앞의 이스라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사53:6)
이스라엘 뿐이겠는가?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면, 성령이 말씀하시는 대로 하면, 우리가 손해를 보고, 인생이 안 될 것 같은 위기를 맞이할 때가 있다. 참으면 안될 것 같고, 용서하면 억울하기만 할 것 같을 때도 있다. 하나님 앞에 물질을 드리면 내가 쓸 것이 없을 것 같고, 심지어 기도해도 안될 것 같을 때도 있다. 신앙이나 믿음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할 때도 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터무니 없다고 여길 때도 있다.
그런데 이사야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라.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이사야55:8-9)
뜻을 다한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이것이다. 나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다고 느껴질 때, 내 생각을 고집하고 싶고, 더 따르고 싶은 관성이 작용할 때, 하나님의 생각을 따르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 거기서 원망하고 불평했다. 우리는 광야의 이스라엘을 보면서 어리석고 답답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인간이 헤아릴 수 있는 뜻을 훨씬 뛰어 넘었다. 광야를 지나간다고 하더라도 주리지 않았고 목마르지 않았다. 발이 부르트거나 옷이 헤지지 않았다. 고린도전서10장이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사람이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없었고, 미쁘신 하나님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허락지 않으시고, 시험을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셨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함과 같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연단하시고, 정금과 같이 나아오게 하셨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을 비롯해서, 하갈이나 모압의 여인이었던 룻과 같은 천한 취급 받는 이들에게까지도 뜻하지 않은 길을 내셨고, 구원과 복된 길로 인도하셨다.
여러분 뜻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주님께서 바라신다.
- 힘을 다하여
힘을 다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힘을 낼 수 없는 상황에서도 힘을 내고, 할 수 없다고 판단되고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상황에서도 노력한다는 뜻일까?
성경 속에서, 이 물음을 찾다가, 다윗의 놀라운 고백을 들었다.
시편18:1-2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사망의 줄이 다윗을 얽어맸고, 불의의 창수가 두렵게 하며, 스올(음부)의 줄이 그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그에게 이른 상황에서, 다윗의 기력이나 힘은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힘이 되어주셨다.
즉 힘을 다한다는 것은, 자기의 힘과 노력이나 의지로 무엇인가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기보다는 하나님의 힘으로 해내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 창조주시다. 온 우주와 만물을 운행하시는 절대자시다. 섭리하시는 분이며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다.
다윗은 골리앗과 맞설 때, 칼과 창과 단창으로 상대하지 않았다. 이미 상대가 되지 않는 결투였지만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가 맞서 싸웠다.
여러분의 삶의 문제와 하나님 중 누가 더 크신가 생각하라. 괴롭게 하고 훼방하고 못살게 하는 이가 있다면 누가 더 지혜로운가 생각하라. 고린도전서는 이렇게 말씀한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1:25)
하나님께서 어리석고 약하다는 표현자체가 불경해보일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의 지혜와 힘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또 성경은 스가랴(4:6)와 고린도전서(4:20)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말씀한다.
베드로와 요한은 공회원들 앞에서 변론할 일이 있었다. 핵심인사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불러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경고했다. 그때,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한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공회원들의 위협과 협박은 두려운 것이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심을 믿었다. 아람군대가 엘리사를 둘렀을 때, 사환의 반응과 엘리사의 반응도 똑같다. 사환이 두렵고 놀라서 호들갑을 떠니까, 엘리사는 기도한다. “저 청년의 눈을 열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소서.” 그러자 불말과 불병거가 엘리사 주위에 둘러 있음을 보았다.
다시 말씀을 전한다. 힘을 다한다는 것은 유한한 개인, 자신의 능력을 100%로 쏟아낸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능력을 믿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힘과 능력이 되어주실 것이다.
이시간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 그 헤아리기 어려운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힘입어 믿음으로 나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