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3일 성령강림절 후 2주

 

  • 예수가 정답이라면서

정답이 두 개니 잘 맞춰보라. 사과나무에 사과가 4개, 복숭아나무에 복숭아가 5개 있다. 배나무에는 배가 몇 개가 있을까? 정답은 두 개다. 분명히 정답이 두 개니 잘 맞춰보라고 말했다.

 

예수가 답이라고 고백하며 살면서, 예수가 정답이 되고 있는 삶을 사는가?

 

고린도교회는 이런 점에서, 정답과는 동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고린도 교회의 사정을 잘 알고 있다. 계층과 분파 갈등. 교회는 세상보다 더 어지러워졌다. 자신이 가진 것, 지위, 생각, 이익을 생각하느라, 예수를 잊었다. 물론 이단이 침투한 영향도 있지만, 더 정밀하게 말하자면, 주님 안에서 완전히 거듭나지 못하고, 이기적인 목소리에 주목한 결과였다.

 

이간질을 하는 사람은 아볼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지만, 바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바울을 불신하게 만들었고, 비난하게 만들었다. 험담은 별식과 같지만,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게 한다(잠18:8). 사람의 속을 부패하게 만든다는 말이다.

 

그런데 다행히 디도를 통해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회개에 이르렀고 믿음을 회복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울의 모든 우려가 사라졌다. 눈물로 쓴 편지의 진심을 읽었다고 볼 수 있다. 얼마나 잘 된 일인가? 믿음이 파선을 당하지 않고, 교회가 든든하게 서야, 영혼의 방주는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핵심적인 신앙의 교훈을 전한다.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하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낙심하지 않는다.”, “박해를 받아도 거꾸러뜨림을 당하지 않는다.”

 

누구에게 적용된 말씀일까? 단언컨대 바울이다.

1장 8-9절을 보면,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

 

라고 증거한다.

 

11장 23-27절을 보자.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번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휘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박해와 고통을 당하는 중에, 남의 속도 모르고, 교회에서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은 바울이 공적인 자금으로 편안하게 허튼짓을 한다고 입을 놀렸다. 이런 오해를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답답한 일이다.

 

그가 고린도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로 심령이 편하지 못했다고 한다(2:13). 그래서 박해와 환난 속에서도 드로아에서 전도의 문이 열렸지만, 빨리 디도를 만나볼 요량으로 마게도냐로 달려갔다.

 

  1. 편치 못한 심령으로

편치 못한 심령은 무엇일까? 바울이 이런 중에도 염려하는 것은, 자기가 받는 모함과 체면과 이익이 아니었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잘못 비춰질 모습에 대한 것이었고(4),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 믿음에서 끊어지는 일이었다.

 

아무리 오래 믿었다고 하고 직분을 맡았다고 해도(1), 상황에 따라 믿음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믿음의 반석 위에 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대한 것을 믿으려 할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나타난 변함없는 주님의 사랑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의 대한 것을 믿는 것은, 자신을 흡족하게 해줄 상황과 환경을 거래하듯이 믿는 것이다.

 

히브리서12장 2절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말씀했다.

왜 이런 말씀을 하고 있는가? 우리가 믿음의 반석은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지, 상황과 환경이 아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면서 죽음과 사망 권세라는 상황과 환경까지 이겨내신 분이시다.

 

고린도교회가 개개인 각자의 의와 고집으로 분열과 갈등을 거듭하는 동안 예수님을 잃어버렸다. 게바니, 아볼로니, 바울이니, 그리스도니 하면서 사람에 대한 평가와 취향에 자신의 믿음을 맡겼다.

 

4절에 보면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믿음에 대해서 스스로 자만하면서 예수를 잃어버린 믿음의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교회 안에서 예수가 보이지 않고, 사람의 정죄거리가 보인다. 예수님의 사랑이 보이지 않고, 자기와 성향과 뜻이 맞는 사람이 보인다. 은혜와 평강을 누리지 못하고 혼미한 영의 불편함이 자신을 사로잡는다.

 

그래서 바울은 다시 새롭게 튜닝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사람을 보지 말고, 우리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라는 말씀과 다름없다. 사람은 반대파 사람이기도 하고, 성향이 맞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며, 또 바울이기도 하다.

 

여러분에게 이러한 깨달음과 새로움이 있기를 축복한다. 주님을 온전히 바라봄으로 은혜와 평강을 얻길 주님께서 원하신다.

 

 

  1. 심히 큰 하나님의 능력

심히 큰 능력이란 무엇일까? 우리에게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예수를 통해서 알게 되는 심히 큰 능력이란 무엇일까?

 

6절 말씀과 7절 말씀을 직접적으로 연결지어본 적은 없다. 말씀이 7절에서 문단이 나뉘듯 나뉘어 있기 때문에, 별개로 생각한다.

 

①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 ②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 ③ 우리의 마음에 비추심

 

1)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로마서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말씀하고 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영원토록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도록 붙잡으신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예수님의 얼굴을 한 번도 실제로 본적은 없지만 주님의 얼굴이 심령 속에 떠오르고 생각날 때가 있다. 그 때문에 힘을 얻고 용기를 얻는다. 그냥 지나치는 우연한 상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한 것이다.

 

바울은 힘들고 괴로웠을 때, 박해와 환난이 그를 둘러싸고 있을 때, 끊임없이 십자가의 죽음을 짊어진 예수의 생명이 그에게 나타나는 것을 경험했다(10). 히브리서2:18은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말씀했다.

 

예수님의 얼굴이 자꾸만 떠오르는 사람은 복되다. 임마누엘이신 주님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일마다 형편마다 그 얼굴을 보여주신다.

 

2) 세상의 영광이 있고,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 어느 것이 하나님의 영광인지 깨달을 수 있는 빛이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약할 때 강함 되시고 약한 데서 온전하여지게 하시는 은혜” 이다. 14절은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말씀했다. 미련하고 연약한 것들을 높이 들어 쓰시고, 안될 것 같아 보이고 안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이루시는 하나님만의 능력이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알았겠는가?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고 마실 것이 없어 절박하지 않았더라면,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은혜를 알았겠는가? 감당치 못할 시험은 허락지 않으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시는 하나님의 은혜, 그것을 깨달으며 믿으며 살아가라. 주님이 기대하신다.

 

3) 그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춰주신다고 했다. 이 시간 믿음을 사모하고 바라는 자에게는 주님이 그리스도의 얼굴, 하나님의 영광, 그것을 아는 빛을 비춰주실 줄로 믿으라.

아시는가? 이것이 우리를 일으키시고 새롭게 하시며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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