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31일.
복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 복된 주님의 날에 저희를 부르셔서, 예배의 자리에 참여하게 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맹추위가 가신 자리에 곧 겨울이 지나갈 것을 기대하며 희망으로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우주만물의 창조자시며 섭리자이신 주님께 모든 염려를 맡기고 그 뜻에 순종하길 원하오니, 위로부터 내리시는 평강이 저희 모두에게 충만하게 하여 주시고, 성령으로 저희와 함께 하셔서, 저희 예배가 주님의 영광을 높이 드러내는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는냐(렘4:14)
- 사람이 죽을 때 후회하는 것
사람이 죽을 때 많이들 후회하는 것이 있다는데, 그 중 5개만 소개하겠다.
– 좀 더 도전적으로 자신감 있게 살지 못한 것.
– 내 감정을 솔직하게 주위사람들에게 표현하지 못한 것.
– 나의 삶이 아닌 주위사람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온 것.
– 결국 행복은 내 선택이라는 걸 이제 알았다는 것.
나머지 하나는 무엇일까?
– 수많은 걱정거리를 안고 살아온 것.(잠시 후에)
- 기도의 은총 : 스룹바벨과 여호수아
여러분, 누군가의 기도를 받아본 적 있는가? 받고나면 참 좋다. 힘과 용기가 나기도 하고,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얻기도 한다. 참 신비로운 경험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도 들고, 자기 스스로 갇혀있던 세계에서, 생각지도 못한 깨달음으로, 빠져나오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낙심했던 사람들이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 올랐는지도 모른다. 왠가 하면, 선한 일에 대한 방해꾼들 때문이다.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와, 제일 먼저 하려던 것이 성전건축이었다. 예배회복을 사모하며 꿈꿨다. 예루살렘이 함락된 이래, 70여 년을 무너진 상태로 방치돼있었다. 성곽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성읍은 황폐했다. 다른 건물이나 집들도 있는데, 그러나 먼저 성전건축을 시급한 과제로 생각했다.
사라진 성전은 솔로몬이 7년 동안 지었다. 그 이후 이스라엘의 모든 삶의 중심이었다. 다윗 때부터 치밀하게 준비된 상태였고, 태평성대에 넉넉한 재정과 물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열악한 사정으로는 건축비용을 어떻게 감당할지, 인력은 어떻게 충원할지, 여러모로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야 한다는 일심으로 시작했다.
어딜 가나 방해꾼이나 훼방을 놓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이득을 계산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성전건축의 상징성 때문에라도, 찾아오게 될 기득권의 지형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페르시아의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서 성전공사가 진행되지 못하도록, 직무정지가처분 소송을 벌이기도 하고 여러 모로 방해를 했다. 페르시아에 고발장을 보냈는데, 모든 것이 거짓으로 꾸며진 것이었다. 내용은 이들이 성벽을 짓고 페르시아에 대적행위를 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성전을 지으려 했던 것이지, 성벽을 지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얼마나 낙심했겠는가? 아무리 항변을 해도, 이유 있는 항변도 소용이 없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조금만 조사를 하면 사실이 드러나는데, 왜 이런 거짓이 통했을까? 세상은 얼마든지 이럴 수 있다. 뇌물과 의혹을 증폭시키는 전략은 당장 통하는 전법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속는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겉으로는 성전을 짓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성벽을 짓는 꼼수라고 오도했다. 과거를 조사해보면 그 전력을 알 수 있다는 말은 결정적이었다. 페르시아 당국은 방해자들이 심어준 이 의혹을 받아들였다. 공사는 중단되고, 페르시아 왕은 공권력을 투입에서 그 일을 강제적으로 막도록 했다. 어느 시대건 공의는 가벼이 넘긴 뇌물과 이기심 때문에 쉽게 무너지고 꿈은 좌초된다. 슬픈 현실이다.
여러분, 이들의 그 기대와 포부가 어땠는지, 단적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건축자가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 그 감격 때문에, 백성들이 큰 소리로 찬양을 부르고 감사하면서 목 놓아 울었다. 그런데 거짓 고소고발과 교묘한 술책과 방해로, 이 중요한 사업이 물 건너가는 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여러분, 기도는 사람을 일으키고 세우고 살리는 힘이 있다. 그 때 학개 선지자가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스가랴가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의 마음을 굳세게 지켜주실 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들 역시 굳세고 담대한 마음으로 합심하여 일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이들과 함께 하셔서 고난과 난제들을 이기게 하시고 예비된 주님의 섭리와 역사를 경험케 되도록 기도한다(에스라2:4).
기도를 받은 자들의 심령은 어땠을까? 성전 재건의 중요 인물 중 하나가 대제사장 여호수아였다. 방해꾼들은 그의 자격과 직무에 대해서 험담하고 깎아내렸다. 스가랴는 그를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으로 위로한다. 천상에서 사탄이 대제사장 여호수아에 대해서 비방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오히려 사탄을 책망하시면서 말씀하신다.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갈아입히시고 정결의 관을 씌우신다(스가랴3:2). 이런 환상과 비전을 꾸어가며 위로했다.
꼭 신체적인 죽음만이 죽음은 아니다. 살아나는 생명 경험도 마찬가지다. 마른 뼈 같고 생기를 잃었던 사람이 생명의 영이신 주님으로 가득 차게 되는 체험 속에서 은혜를 경험한다. 이런 경험을 간절히 사모하는가? 기도를 받는 심령들을 바로 이런 은혜들을 체험한다. 이 체험은 복음을 경험하고 주님을 만나는 경험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안에서 이와 같은 은혜를 체험하기를 바라신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 지어다. …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4-16)
시편의 시인은 이렇게 고백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미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을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42:11, 43:5)
- 지속적으로 받는 기도
그들이 한두 번 기도를 받거나 위로를 받은 것이 아니다. 에스라5장 2절을 보면, “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하며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있어 그들을 돕더니.” 어떻게 하는 것이 ‘함께 있는 것’이고 ‘돕는 것’인가?
# 중학교 동창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 힘든 일이 있었는데, 매일 보내주는 문자 말씀을 자기 것으로 여기고, 친구로부터 기도 받고 있음에, 힘을 내서 이기게 된 것에 대해, 감사의 표시였다.
‘함께 있어 돕는다’는 것은 지속적으로, 말씀의 권면과 기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는 계속적인 위로와 기도에 힘과 용기를 냈다. 주님은 이러한 사모함이 있길 바라신다.
중단됐던 예루살렘 성전 복원공사가 재개됐다. 그 과정에서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첫째는, 페르시아의 관리들, 총독 닷드내와 스알보스내, 그리고 다른 공무원들이 이 일을 ‘능히 막지 못했다.’(5절) ‘하나님께서 돌보셨으므로’ 사실 막을 명분도 없다. 모함에도 불구하고 성전을 짓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도 없었다. 오히려 현장에서 보여지는 증거는 그것이 분명했다. 오히려 그것을 더 막다보면 뇌물과 불의와 거짓만 드러날지도 모른다. 우리는 괜한 염려와 걱정 때문에 두려워하고 낙심할 때가 있는데, 용기를 내라.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 안에 주님이 계시는 일은 능히 이룰 수 있다. 주님께서 도우시고 인도하신다.
이 때문에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에 이런 고백을 한다. 그 교회에 박해와 어려움이 따랐지만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복음을 위해 애쓰는 모든 일들은 헛되지 않다.
두 번째, 더 신기한 일은 이것이다. 방해꾼들의 거짓된 고발장을 조사하다가 뜻밖의 일이 일어난다. 다리오에게 이 보고서를 올려서 답신과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그 전에 아까 말했던, 후회하는 마지막 한 가지는 무엇인가?
– “수많은 걱정거리를 안고 살아온 것.”
여러분, 주님 안에서 평강을 얻으라. 때마다 일마다 평강을 주시는 주님을 의지하라.
다리오는 이 사안에 대해 조사를 지시했는데, 선왕이었던 고레스의 조서가 발견됐다.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라는 고레스 왕의 명령이 있었다는 항변은 사실이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전각에서 방치되고 지연되다가 잊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다리오 왕이 재차 명령을 내렸다. 옛날에 그 성전에서 탈취했던 성전의 기물들을 모두 원상복구하고, 성전을 짓는데 필요한 경비는 유브라데스 강 주변에서 거둬들이는 세금으로 충분히 지원하고 돕게 했다.
- 염려하지 말라.
주님은 이것을 깨닫길 원하신다. 우리가 너무 많은 염려를 하고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섭리하고 계신다. 방해가 없었다면, 어려움이 없었다면, 잠자고 있었던 것, 묻혀 있었던 것이 드러났을까? 그냥 사장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님의 섭리는 우리가 측량할 수 없다.
같이 읽음 :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우리 인생에서 어렵고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 앞에 기도할 뿐이다.
야고보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야고보서5:13-14)
고난 받는 자든, 병든 자든, 마음이 괴롭고 힘든 자든, 기도하며, 기도받기를 바라고, 또 성도는 서로 기도해주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고 우리에게 일깨우고 계시다.
자녀의 탈선으로 속상해하던,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에게 암브로시우스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기도 받는 자녀는 망하지 않는다.” 나중에 어거스틴은 교회사와 인간의 정신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기도 받는 자녀는 인생의 행복과 승리의 길을 놓치지 않는다.
사업장과 기업이 기도를 받고 재물 얻을 능력을 얻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형통하게 된다.
병든 자, 심신이 약한 자, 기도를 받으면서 강건케 된다.
기도 받는 가정은 믿음 안에서 화목화고 복되게 된다.
믿음의 문제로 고민하는 자, 영적인 방황이 있는 자, 기도를 받으면 믿음의 뿌리가 견고해진다.
어떤 계획과 선택의 기로에 있는 자, 기도를 받으면, 복된 길로 걸어가게 된다.
주님이 원하신다.
- 제안
이번 사순절 기간은 2월 10일부터 3월 26일까지이다. 그리고 3월 27일은 부활주일이다.
두 가지를 작정했으면 좋겠다.
첫째는 자기의 기도제목을 주님께 맡기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방향은 자기 영광이나 이기적인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여야 한다.
두 번째는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했으면 좋겠다. 적어도 10명이상을 위해서 기도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남편, 자녀, 친척을 포함해서, 복음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도록 기도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