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출4:17,20)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출4:17,20)

 

 

 

2020년 8월 16일 주일예배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우시는 사랑의 하나님, 거룩하게 구별된 주님의 날에 저희를 부르셔서, 예배의 자리에 참여하게 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기나긴 장마가 끝났다고 합니다. 코로나19로 고통스러운 이때에 바벨론이여 무너졌다고하는 음성이 곧 들려올 것 간절히 소망하며,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 원하여 주님 전에 나왔사오니, 우수어린 눈물도, 답답한 가슴도, 어눌한 육신도 주님의 음성으로 위로받게 하여 주시고, 성령으로 저희와 함께 하셔서, 저희 예배가 주님께 합당한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고후2:16-17)

 

  1. 울컥하시는 하나님

이 시간 좋으신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와 함께 하신다. 생명의 주인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의 힘을 공급받고 새 힘이 넘치시길 빈다.

 

① 주 중에 또 울컥한 일이 있었다. 민선이가 머리 때문에 큰 병원에 갔다. 김집사님과 민선이의 마음의 걱정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탄식하며 기도했다. 김집사님이 민우 때문에 시련의 시간을 보냈는데, 또 그 시간을 겪어야 하는 건가, 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애원했다. ‘피할 수 있게 해주십사’ 말이다.

 

‘혹시 큰 병마가 찾아온다 해도 지금이라도 돌이켜 주소서. 주의 종에게 치유의 은사를 주셔서 민선이를 위해 기도할 때, 역사하옵소서. 병마를 제압해주시고, 토기장이의 부드러운 손길처럼 민선이를 만져주셔서, 병마의 나쁜 힘과 영향력이 힘을 잃고 무너지게 하소서.’

 

집사님이 민선이랑 병원에 갔다. 결과를 조마조마하게 기다렸다. 전화를 받고서 울컥했다. 다행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경과를 추적관찰하면 된다고 한다. (이 시간 민선이와 집사님이 힘을 내시라고 격려와 위로의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란다.)

 

② 어제 정화선 권사님의 따님 오유향 자매의 결혼식이 있었다. 아름답고 훌륭한 결혼식이었다. 화려한 이벤트와 콘텐츠를 돈을 주고 사는, 요즘의 세태와 다르게 은혜와 감동이 있었다. 대우(大雨)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많은 하객들이 와서 축해줬다. 화창하고 좋은 날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는데, 어쩌면 이들의 인생에서 백신을 먼저 맞는 일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서 큰 비가 내릴 때, 헤쳐나가며 피해갈 수 있기를, 큰 질병과 어려움 없는 인생이 되기를 간구했다.

딸래미들이 나중에 자기들 결혼식을 하면 아빠는 분명히 울꺼라고 했다. ‘아니다, 아빠는 이마 많이 눈물을 흘려서 전혀 안울거야.’ 장담했다. 결혼식이 시작되고, 신랑신부가 동시입장을 했다. 새롭게 태어나는 한 쌍의 가정을 보니, 갑자기 왜 울컥한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이 새가정의 행복을 빌면서 정말 복되기를 바랐다. 결혼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동일했을 것이다. 그리고 정화선 권사님의 마음은 어땠겠는가? 또한 정화선 권사님이 어려움을 잘 이겨냈기 때문에 좋은 사람과 결혼시킬 수 있었고, 유복해 보이는 믿음의 가정과 결혼시킬 수 있었다. 모두 인내하고 참고 견딘 믿음의 결과다.

 

③ 그런데 저 보다, 정화선 권사님 보다, 모든 하객들보다 그 가정이 잘되기를 바라시는 분이 계시다. 저 보다, 김집사님 보다 더욱 민선이가 영육간의 강건하기를 바라며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이 계시다.

그분은 우리가 울 때 함께 우시고, 우리가 아파할 때 함께 아파하시며, 힘겨울 때 함께 고초를 당하시고, 우리가 이겨내고 승리할 때, 대견해 하시며 함께 울컥하시는 분이시다.

 

로마서8:32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이 어려운 때에, 신앙을 지키며 삶의 자리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이들을 울컥한 마음으로 바라보시며 승리하기를 바라시는 줄 믿으라.

 

 

  1. 광야는 훈련장

모든 인생을 보니까 광야가 있다. 모든 시대를 보니까, 거기도 광야가 있다. 모든 사회를 보니까 거기에도 마찬가지다. 광야는 어떤 곳인가? 왜 하나님은 광야를 주시거나 이끄시는 것일까?

 

광야는 척박하다. 안주할 수 없다. 철마다 때마다 이동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불편하다. 고생스럽다. 어려움이 따른다.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광야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고 손쓸 수 없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훈련시키셨다. 왜? 애굽의 노예로 있던 모습을 가지고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음을 성경이 전하고 있다. 가나안의 부족들과 우상들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광야를 참아내고 인내하며 이겨낸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 허락된다. 광야는 믿음이 없어 가나안 땅에 곧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훈련을 위해서든지, 연단을 위해서든지, 방황하고 힘들었던 시기를 연상시킨다.

 

처음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에서 불평과 불만이 많았다.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에도 불구하고 의심하고 불신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애굽이 나았다고, 거기서 죽는 편이 나았을 거라고 다시 되돌아가자고 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게 됐을 때,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다. 조금 위기가 지나고 안정되자 마실 물이 없게 됐을 때, 또 믿음이 사라지고 하나님이 하실 일을 믿지 못하고 불평했다. 마라의 쓴 물을 달게 하셨다. 그리고 12지파가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물이 있는 엘림으로 인도하셨다. 또 다시 위기가 찾아왔을 때, 하나님에 대한 회의감을 갖고 모세를 대적하기 시작한다. 반석에서 물을 내셨다.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승리하고 내려가면 패하는 것을 보면서 아론과 훌이 옆에서 그 손을 붙들었는데, 가나안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서 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이미 아낙자손이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자, 간담이 녹았다. 또다시 하나님을 원망한다. 광야에서 어느 정도 적응이 되자, 모세가 시내산에 오른 틈을 타서 우리를 인도할 신을 모르겠다고, 결국 황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다.

저는 가끔 우리의 모습이 이와 같지 않은지 생각한다. 조금 안정되면 하나님을 잊기 십상이다. 특히 코로나 때문에 힘겨운 상황이 계속되자, 교회마다 이런 신자들이 많이 생겨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쉽게 잊는다. 한 주 두 주 온라인 예배를 드리다가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고 느슨해진다. 예배에 소홀해지고 회의감이 든다. 결국에는 가장 신실하고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잘 지킬 것 같던 사람들까지도 신앙을 버리고 교회를 떠나는 일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영적인 분별력을 잃고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듣지 못하는 지경이 된다. 진리에 대한 구분 없이 혼돈의 영에 휩싸인다. 목회자로서 참 가슴 아픔 순간이다.

 

이사야53:6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은 오늘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의 몸 된 교회에 꼭 붙어있기를 바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란다. 집 나간 둘째를 동구 밖까지 나와 기다리시는 아버지처럼, 비록 잠시 길을 잃었더라도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신다. 이 어려운 때에 한국교회가 진리와 믿음과 말씀의 반석 위에 굳게 서기를 주님께서 바라신다. 이것을 위해 기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란다.

 

광야의 인생을 성경은 한 마디로 정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다.” 광야는 인생의 훈련이 있는 곳이자, 하나님은 교관이요, 그 인도하심과 계획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가는 곳이다.

 

  1. 예배 훈련장 광야

그런데 광야에 대해서 이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가장 주된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모든 설명이 다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빼놓으면 하나님의 본래적인 목적을 잃는 것이다. 가장 중요하다. 이 목적 안에 모든 것이 포함돼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야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배우는 곳이다. 인생을 훈련하는 곳이란 명제는 어쩌면 부차적일 수 있다. 이유를 살펴보자.

 

① 출3:18을 보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로에게 가서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 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고 하신다. 출애굽 사건을 구원과 자유와 해방의 사건이라고 본다면, 바로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어딘가 미흡하다. 자유와 해방과 구원의 선언이 담겨야 맞지 않을까? 바로 왕에 대한 작전이나 전략이었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해서 이렇게 말하라고 하셨을까?

그런데 정말 광야는 하나님께 예배하고 제사하며 그것을 배우는 곳이라고,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해가 된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려면 먼저 하나님을 예배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님과 우상을 구분하고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눈에 보이는 금송아지가 우상임을 깨달아야 한다.

② 모세오경에서 제일 중심이 되는 성경은 레위기이다. 창세기는 율법을 주신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출애굽기는 그 하나님과 언약을 맺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민수기는 레위기를 가지고 훈련한 것이다. 민수기의 본 뜻은 ‘베미드바르’(광야에서)라는 뜻이다. 신명기는 레위기의 적용이다. 그렇다면 레위기는 어떤 책인가? 1장에서부터 9장까지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방법에 대해서 제일 먼저 다루고 있다. 광야의 제1 목적은 바로 예배를 배우는 것이다.

③ 오늘의 말씀의 앞뒤 문맥을 이루고 있는 출애굽기 3장 4장도,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난 모세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나님의 현존하심 앞에 선 모세, 즉 출애굽기3-4장에는 예배의 온전한 모형이 담겨있다. 화제니, 전제니, 거제니 하는 방법 말고,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서서 예배하는 영적인 모형 말이다. 첫 번째는 모세를 부르심으로 시작된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출3:4) 소명사건이다. “그곳은 거룩하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3:4)고 말씀하신다. 하나님 앞에서는 나의 방법, 생각, 의지들을 내려 벗어 놓아야한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이며 어떠한 지를 알려주신다. 하나님의 뜻과 생각과 섭리 혹은 방법, 지혜를 아는 것이다. “내가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았고, 그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출3:7) 복음을 아는 것이다. 세 번째는 사명을 맡기신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3:10) 들음과 믿음에서 일어난다. 네 번째는 확신과 능력을 주신다. 모세가 의심하고, 자신의 능력을 저울질 하고 있으니까, 하나님은 손에 든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게 하신다. 그리고 다시 그 뱀을 잡으니 지팡이가 되게 하신다. 또 손을 품에 넣어 나병이 들게 했다가 다시 품에 넣어 깨끗하게 하시는 이적을 통해 확신을 갖길 바라셨다. 그러면서 오늘 읽은 4:17말씀에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말씀하셨다. 능력을 주신다. 시키는 대로 하는 순종과 은총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이것이 우리가 예배하면서 일어나는 영적인 현상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우치며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를 바라신다. 각자 자기에게 맡겨주시는 사명을 깨닫고 감당하기를 바라신다. 결단과 확신이 있기를 바라신다. 자기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행할만한 능력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바라신다.

 

바울이 이것을 깨닫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고백했다.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12:10) 고백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의 영적인 결론은 이런 것이다.

 

 

  1.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으라.

기후 이상으로 인해 온 나라가 물에 잠기고 슬픔에 잠겼다. 코로나19로 인해 오랫동안 고통을 받고 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의심이 찾아들며 회의적인 마음이 엄습하기 쉬운 때이다. 실제로 애굽으로 돌아가려는 교인들이 생겨나고 있다. 우리는 광야에 서 있다. 이시간 여러분의 믿음을 점검해보라. 하나님은 우리가 광야에서, 광야와 같은 인생 안에서 예배를 배우기를 바라신다. 예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말씀하셨다. 오늘 하나님께서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과 온라인으로 예배하는 우리들을 찾으셨다.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서길 바라시는가? 심중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마음을 이겨내고 부르심을 사모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갈급해하며, 하나님의 뜻과 마음과 생각을 알기를 간절히 원하시는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사명을 감사히 받으시는가? 믿음의 반석과 확신 가운데 서 계신가?

 

4:20을 보니까 모세가 그의 아내와 자녀들과 애굽으로 돌아가면서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기록하고 있다. 오늘 여러분의 손에 하나님의 지팡이가 들려 있기를 축원한다. 모세가 늘 가지고 다니던 지팡이가 광야에서 예배를 거치고 나니까 하나님의 지팡이로 변하여 애굽으로 가고 있다. 마찬가지로 세상적인 근심, 염려, 방법, 초라함, 연약함이 주님 안에서 능력으로 바꿔주신다. 이시간 삶의 자리로 나아가는 여러분의 손에 하나님의 지팡이가 들려있음을 깨닫게 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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